Unknown Hero, but surely exist
*후훗님과 연성 교환을 했습니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써달라고 하셨는데... 비일상 비중이 좀 많아졌습니다...
*DX3rd 시나리오 「온리 론리 히어로즈」의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
───세상이 한순간에 어두워졌다. 검게 물든 하늘을 온통 검은 구름이 뒤덮어, 어두워진 원인이 대체 무엇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어둠과 함께 찾아온 정적을 깨려는 듯이 한 줄기의 번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내리꽂혔다. 그러나 이질적이게도 그 번개 역시 검은 빛을 띠고 있었다. 정적이 무너지기를 기다리기도 한 것처럼 하늘에서는 연신 검은 번개가 우렛소리와 함께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번개가 번쩍이는 것과 함께 어두웠던 시야가 점점 밝아졌다. 그 번개는 주위에 가득한 괴물들을 향하고 있었다.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 그리고 살이 타들어가는 냄새가 검은 빛과 함께 주변을 메우고 있었다. 아니, 매캐한 냄새는 번개에 맞은 괴물들에게서만 나는 것이 아니었다. 가장 가까운 냄새가 자신의 바로 오른쪽에서 나고 있음을 깨닫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천천히,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검붉은 색으로 물든 자신의 팔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보인 것은, 그 팔이 자신보다 배는 더 큰 괴물의 모가지를 거칠게 붙들었다가 아무렇게나 집어던지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오오스케에게는 자신이 그런 행동을 했다는 자각이 없었다. 오히려 오른팔이 제멋대로 그렇게 움직인 것에 더 가까웠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번개가 멎기 시작했다. 주위에서 움직이는 것은 오오스케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그의 주변에는 본래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까맣게 탄 시체만이 가득했다. 그것은 원래 인간이었을까, 괴물이었을까. 그조차도 알 수 없었다.
마치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때와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다. 그때와 다르게 오오스케의 정신은 너무나도 맑았다. 오른팔이 제멋대로 움직인 것을 제외하면, 이 참상을 저지른 이가 자신이라는 자각이 확실히 있었다. 그렇다, 이 모든 일은 자신이 저지른 것이다. 그 사실을, 오오스케는 뼈저릴 정도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어라.”
그렇다면 자신은 어째서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인가? 이만한 짓을 저질렀다면, 그에 상응하는 동기가 분명 있어야 할 텐데, 어째서? 그러나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그저 끝없는 무감각함만이 계속 되새겨질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 마땅히 느껴져야 할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고, 오로지 무감각만이.
그때, 오른팔이 갑자기 저절로 움직였다.
* * *
“……헉.”
눈이 저절로 떠졌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낯익은 천장이었다. 깔끔한 하늘색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야광스티커의 흔적. 족히 몇 년은 봐온, 바로 자신의 방의 천장이었다. 그 사실을 인식한 후에야 비로소 안도감이 찾아왔다. 아, 방금 그건 꿈이었구나.
이번에는 자연스럽게 시선이 오른팔로 향했다. 언제나 오른팔에 칭칭 감겨 있는 하얀 붕대는 어쩐지 자기 전보다 더 거뭇거뭇해진 것 같기도 했고, 딱히 달라진 점이 없는 것처럼도 보였다. 어느 쪽이든 중요한 건 붕대가 별 일 없이 제자리에 감겨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꿈이라 해도 저도 모르게 능력을 쓰기라도 했다면 그건 매우 큰일이었다. 혹시 몰라 괜히 이불도 들춰봤지만 이부자리에는 그 어떤 흔적도 없었다. 그렇다면 정말 별일 없었다고 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제서야 마음이 놓인 듯 오오스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는 거지?”
“……이프리트.”
‘나는 네 의식에만 간섭할 수 있다. 따라서 네 무의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면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범주의 일이 아니야.’
“아, 그냥 꿈을 좀…….”
그 말에 이프리트가 이죽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오오스케는 늘 그랬듯이 그 말은 한 귀로 듣고 흘리기로 했다. 그래, 꿈이다. 의식이 잠든 순간에만 몸을 지배하는 무의식의 발로(發露). 의식의 몇 배는 되지만 의식이 깨어나는 순간, 그 즉시 주도권을 빼앗기고 마는 무의식. 따라서 그것에 너무 얽매일 이유는 없었다. 당장 지금도 방금 전까지는 그렇게도 생생했던 꿈이, 깬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기억도 제대로 안 날 정도로 흐릿해지지 않았는가! 분명 이 모든 일은 최근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던 임무 때문일 것이다. 집에 돌아온 직후, 제대로 씻지도 않고 그대로 죽은 듯 잠든 게 대체 며칠이었는지. 그리고 바로 어제가 드디어 임무가 어느 정도 일단락된 날이었다. 몇날 며칠을 이어져오던 긴장이 풀리니 괜히 이상한 꿈도 꾸고 그러는 것이었다. 그래, 그런 것이 틀림없었다.
“오오스케~! 너 아직도 자고 있니? 너 오늘 약속 있다 하지 않았어?”
오오스케가 그렇게 생각하며 머리를 몇 번 끄덕였을 그때,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같이 들려온 어머니의 목소리에 오오스케는 뒤늦게 시계를 확인했다. 시계는 평소라면 오오스케가 일어난 것도 모자라 아침 운동까지 마치고 막 다시 집에 돌아왔을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좀처럼 늦잠을 자지 않는 오오스케였지만, 이렇게까지 늦게 깨어난 건 아마 그동안 쌓인 피로가 원인이리라. ‘아, 아니요. 일어났어요!’라고 대답하며 오오스케는 어쩐지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늦게까지 자본 건 또 얼마만이었더라. 오랜만에 주어진 일상의 한 편린이었다.
“아,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잠시 감상에 젖어 있던 오오스케는 아까 어머니가 말씀하신 약속이란 단어를 다시 기억해내고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섰다. 그렇다, 오늘은 제법 오랜만에 마사요시를 만나는 날이었다. 아무리 같이 있던 시간이 길다고 해도, 오랜만에 본다고 하니 괜히 설레는 건 역시 어쩔 수 없었다. 꼼꼼하게 나갈 준비를 마친 오오스케는 괜히 팔에 감겨 있던 붕대를 제대로 다시 감았다.
막 깨어났을 때의 미묘한 기분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지고 없었다.
* * *
약속 장소인 광장의 시계탑 아래, 오오스케는 서두른 덕분에 다행히 늘 그랬던 것처럼 약속 시간 10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따지고 보면 10분 정도 늦어도 지각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10분 일찍 오던 사람이 10분 늦으면 지각은 아니라고 해도 괜히 신경 쓰이는 게 사람 마음인 법이다─. 그렇게 오오스케가 10분 일찍 도착해서 마사요시를 기다리는 게 언제나의 두 사람의 루틴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 달랐다. 오늘은 오오스케가 아니라, 마사요시가 먼저 와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오오스케 군! 여기야, 여기.”
“마사요시! 일찍 왔네?”
“그게, 오랜만에 오오스케 군을 보는 거니까 말이야. 너무 설레서 눈이 엄청 일찍 떠진 거 있지?”
그리고 오늘은 ○×□△ 시리즈 신작 같이 보기로 했잖아! 나는 만화로만 봤는데 그걸 영화로 본다니까 또 너무 기대돼서─── 들뜬 목소리로 오늘 같이 보기로 한 영화에 대해 한참을 얘기하던 마사요시는 뒤늦게 계속 자기만 얘기하고 있다는 걸 헉, 소리를 내며 괜히 숨을 들이마셨다.
“미안……, 너무 나만 얘기했지?”
“괜찮아, 괜찮아. 그만큼 기대됐다는 거잖아?”
약간 풀이 죽은 마사요시를 위로하듯이 오오스케는 환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벌써 풀죽은 모습을 보고 싶지도 않았고, 좋아하는 것에 대한 얘기를 하는 마사요시는 얼마를 봐도 질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또 듣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아, 그렇지. 팝콘은 뭐 먹을까?”
“음……, 어렵네……. 오오스케 군은 뭐가 좋아?”
“난 아무거나 괜찮은데.”
“그게 가장 어렵다는 거 알지!?”
“그치만 진짜 아무거나 다 괜찮은걸.”
그럼 가서 결정할까? 그렇게 말하고 오오스케는 마사요시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는 게 좋겠다며 마주 잡아오는 손에서는 기분 좋은 따스함이 느껴졌다. 그 온기는 오랜만에 느끼는 일상의 온도와 닮아있었다.
*
“우와, 진짜 신기했어! 그, 3D 안경?도 되게 멋지게 변했고, 의자도 막 움직이고! 화면이야 당연히 더 커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온다거나, 이런 건 상상도 못했거든! 미래의 기술은 정말 대단하구나…….”
“아, 3D 안경이라면 그, 셀로판지 붙은 안경 말하는 거지? 빨간색이랑 파란색.”
“응, 그거! 오오스케 군도 아는구나? 난 당연히 그런 걸 생각했는데…….”
고심해서 고른 카라멜 팝콘은 맛있었고, 기대했던 영화는 기대를 배반하는 일 없이 재밌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큰맘먹고 평소에는 비싼 가격 때문에 엄두도 못냈던 4DX 영화관을 고른 것도 좋은 선택이었다. 만족스러운 경험 덕분에 영화관을 나올 때까지 계속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조금 늦게 자신들이 다음 행선지를 결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좀 걸어볼까? 그런 말을 하며 번화가를 걷던 오오스케는 문득 아까 본 무언가를 떠올려냈다.
“맞다. 아까 보니까 여기 1층에 오락실 있던데, 거기도 가볼래?”
“오락실 좋지! 그러고보니까 나, 친구랑 오락실 가보는 거 처음일지도.”
“그래? 생각해보니 나도 좀 오랜만인 것 같기도 하고…….”
“오오스케 군도? 되게 의외다~”
“그럼 이참에 가볼까?”
마사요시의 그러자는 대답과 함께 대화를 가볍게 마무리하고 두 사람은 근처의 오락실로 향했다. 오락실 안은 휘황찬란한 조명과 네온사인, 그리고 약간은 시끄럽게 느껴지는 각종 소리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 그날 이후로 바빠진 탓일까, 한때는 꽤나 익숙했던 풍경이 어쩐지 낯설게도 느껴지기도 했다. 정말 오랜만에 마주하는, 일상의 한풍경.
“오오스케 군! 여기 인형뽑기 기계 좀 봐봐.”
잠시 오락실 내부를 둘러보던 마사요시는 오오스케를 부르고는 한 인형뽑기 기계를 가리켰다. 그 안에 들어있는 개성적인 인형들 사이로 유독 빨간 도마뱀처럼 생긴 인형이 눈에 띄었다. 오오스케 역시 그것을 보고 마사요시와 비슷한 걸 떠올렸는지 저도 모르게 작게 웃었다.
“닮지 않았어?”
“그러게, 닮았다.”
잠시 오른팔이 뜨거워지는 느낌은 들었지만, 오오스케는 익숙하게 그 느낌을 무시했다. 하지만 진짜 닮았는데. 어쩌면 본체보다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오오스케의 반응이 만족스러운지 마사요시는 그 인형을 가리키며 ‘뽑아볼까?’라고 물어왔다. 오오스케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사요시는 기다렸다는 듯이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기계 앞에서 자리잡았다.
“이래봬도 나, 이런 거 좀 자신있거든!”
자신만만한 말투가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얼마 안 가 집게가 가뿐히 빨간 도마뱀 인형을 들어올려 배출구 부분에 떨어뜨렸다. 함께 쟁취의 기쁨을 나눈 후 오오스케는 마사요시가 건네준 인형을 받아들었다. 그 탓에 자연스레 인형과 오오스케의 눈이 서로 마주친 그때였다.
“어라……?”
뭔가, 너무나도 추상적이라 말로는 차마 표현할 수 없는, 그렇지만 중요한? 아니, 중요한 것이라 하기보다는 너무나도 큰일이라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무언가를 잊고 있던 기분……. 그런데, 뭐였더라……?
“……오오스케 군, 오오스케 군!”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오오스케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이리저리 흔드는 마사요시의 모습이었다. 오오스케가 정신을 차린 걸 본 마사요시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말을 걸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 딱히 무슨 일이 있던 건 아닌데…….”
“임무 때문에 피곤했다든가? 그런 거 아니고?”
“응, 그런 건 아닌데……. 이걸 뭐라 해야 하지…….”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오오스케가 마사요시에게 굳이 무언가를 숨기는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이리 쉽사리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이유는 오오스케 스스로도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그리고 사색이란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주변의 소란스러움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마사요시도 눈치챈 건지 두 사람은 잠시 시선을 교환한 후, 빠른 발걸음으로 오락실을 빠져나왔다.
“아, 그렇지. 이 근처에 맛있는 카페 있다던데.”
“그럼 거기 갈까?”
직후에 주고받은 평범한 대화가, 얼굴에 와닿는 서늘한 바람이, 방금 전까지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졌던 모든 게 어쩐지 낯설게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다.
* * *
눈앞에 놓인 것은 각종 과일이 알록달록하게 올려져 있는 생크림 케이크와 크림이 맵시 좋게 발려진 초콜릿 케이크, 그리고 화려한 색깔의 음료수 두 잔이었다. 일단 먹자는 말에 한 입 떠먹은 케이크는 입 안에서 부드럽게 녹으며 기분 좋은 단맛을 퍼뜨렸다. 단 걸 먹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은은한 조명에 잔잔한 음악이라는 환경 때문일까, 확실히 아까보다는 침착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서로 맛있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을까, 주제가 다시 이전의 것으로 되돌아왔다.
“지금은 좀 괜찮아?”
“응, 진짜 괜찮아.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잠시 정적.
“……아직도 뭐라 해야 좋을지 잘 모르긴 한데, 뭔가, 중요한 걸?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거? 하여튼 그런 거, 를 잊어버린 느낌이, 갑자기 들었달까.”
이상하지, 딱히 뭔 일은 없었는데 말이야. 말을 마친 오오스케의 시선이 어쩐지 저도 모르게 자신의 오른팔과 붉은 도마뱀 인형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듣던 마사요시의 시선 역시 오오스케와 같은 곳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다시 정적.
“……있잖아, 저번에 내가 한 얘기 기억해?”
그리고 이번에 먼저 정적을 깨뜨린 것은 마사요시였다.
“저번에?”
“나, 네 바로 옆에서 널 도와주고 싶다고 했잖아.”
그리고 정 어쩔 수 없으면 내가 오오스케 군 대신 화도 내고, 슬퍼해주겠다고. 말을 마친 마사요시는 괜히 멋쩍게 웃었다. 아, 역시 조금 바보 같은 말인가.
“……응. 분명 그랬었지. 기억하고 있어.”
잊어버렸을 리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네」가 해준 말인데. 잊어버린 것은 방금 그가 해준 말이 아닌 다른 것이었겠지만, 다시 한번 그 말을 듣고 나니 어쩐지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언가를 잊어버려도, 잃어버려도, 그것을 기억해주고, 다시 되찾아줄 수 있는 존재가 옆에 있다는 걸 다시 깨달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 필요한 건 그런 확신이었다.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슬퍼하는 게 아닌, 그게 무엇이든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가득 찬 확신이.
“아하하……. 나, 괜한 걸로 고민하고 있었네. 걱정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지금은 좀 괜찮아? 괜찮아보이기는 한데.”
오오스케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마사요시 역시 편한 표정으로 되돌아와 ‘이것도 먹어볼래?’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케이크를 오오스케 쪽으로 살짝 밀어주었다. 사양하지 않고 한 입 먹은 초콜릿 케이크에서는 씁쓸하면서도, 그렇기에 더욱 달콤하게 느껴지는 맛이 났다.
* * *
그날 밤, 또 꿈을 꾸었다.
세상이 어두워지고, 검은 번개가 끝없이 내리치는 꿈을.
그러나 몇 가지는 달랐다.
그는 마땅히 분노해야 할 것에 분노할 수 있었으며, 온당히 슬퍼해야 할 것에 슬퍼할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을 긍정해주는 이가 옆에 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