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ida Stella
광시곡이 멈추는 날 본문
*폭력, 유혈, 자살 소재 주의
*감독판 상정
“큭…….”
변신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땅바닥에 엎어진 프리드리히는 손톱으로 바닥을 긁으며 자신을 쓰러뜨린 팬텀을 노려보았다.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팬텀은 높낮이조차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단신으로 나를 여기까지 몰아붙이다니, 그 의지만큼은 칭찬할 만하군. 아주 대단해.”
“그, 러셔……? 근데 나, 는 여기서 끝이, 라고 말 안 했…….”
“그러니 방해가 되는 존재는 이 자리에서 없애버리는 게 좋겠지.”
프리드리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팬텀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들어올려 근처의 벽으로 집어 던져버렸다. 몸에 가해진 충격에 검붉은 피를 한 움큼 토해낸 프리드리히는 마치 미끄러지듯이 천천히 주저앉았다. 머리를 세게 부딪쳤는지 머리 쪽에서 무언가 진득하게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여기서 순순히 항복할 수는 없었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뭐, 애초에 도망칠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았지만. 피어 오르는 먼지 탓에 몇 번 잔기침을 내뱉은 프리드리히는 입에 찬 피를 뱉어내고 느릿느릿 일어섰다. 부딪치면서 몸 몇 군데가 부러지기라도 한 것처럼 사지가 잘 움직여주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그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한 번 할버드를 꽉 붙들었다. 그 모습을 본 팬텀은 언짢았는지 프리드리히를 무차별하게 공격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그가 공격을 피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지만, 프리드리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나 다시 일어나려 애썼다. 그러나 이제는 한계에 부딪쳤는지 일어나려다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진 프리드리히를 보고 팬텀은 아까보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게 더 이상의 희망은 없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느끼며 절망하거라.”
몸의 감각이 모조리 뒤틀린 느낌이었다.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 탓에 눈은 가물가물했고, 귀는 먹먹했다. 코와 입은 그저 비릿한 피의 향만 느낄 수 있었고, 살갗은 아프다는 것 외에는 아무 감각도 느끼지 못했다. 고통이 오감을 모조리 삼켜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절망’이라는 단어만큼은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아, 나는 이렇게…….
“너……라면……우리……도움…….”
팬텀이 뭐라 말하고 있었지만 단어가 드문드문 들리는 탓에 뭐라 하는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은 전혀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이대로 절망하느냐였다. 나는, 사람들의 희망을 지키는 마법사인데, 절망, 해서는……. 또 다른 고통이 몸을 잠식하는 것과 동시에 의식이 점점 아득해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고통이 왜곡시킨 오감은 또 다른 고통을 주워올리기에 너무나도 적합했다. 나는, 이대로…….
───그럴 수는 없지.
“웃, 기지 마……. 누가, 절망, 한다고…….”
끊어지기 전의 희미한 의식을 애써 붙잡으면서 프리드리히는 비웃음을 흘렸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 할버드를 붙들은 프리드리히는 인정사정없이 흔들리는 손으로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자신을 찔렀다. 팬텀이 이변을 깨닫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때까지 아무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던 팬텀이 눈에 띄게 놀란 표정을 짓는 게 보였다. 꼴 좋다고 생각하면서 프리드리히는 입모양으로나마 그를 한껏 비웃었다. ‘내 죽음도, 내 절망도, 그 어느 것도 네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없다’고.
아픔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후련한 마음까지 들었다. 여한 같은 건 남지 않았다. 프리드리히는 자신이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자부했다. 이제는 가물어져가기만 하는 의식 속에서 문득 누군가가 스쳐 지나갔다.
……약속,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후회가 조금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1차 >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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