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ida Stella
[하루로렌]그 연주자를 위한 동화 본문
♪I see the moon, and the moon sees me.
God bless the moon, and god bless me.♪
1.
일의 시작은 아무런 예고 없이 일어난 일식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갑작스런 천문현상이겠거니 하며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것이 곧 일어날 재앙의 전조인지도 모르고.
불현듯 하늘이 어두워지는 것과 동시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쓰러져갔다. 쓰러진 채 그대로 움직임이 멈춰버린 사람들, 몸에 보라색 균열이 생기는 듯 싶더니 돌연 괴물로 변모하는 사람들. 별이 지는 것과 함께 각지에서 일어나는 비극. 말 그대로 재앙(disaster)가 따로 없었다. 도망가야 해. 본능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어 하루나는 두 다리를 바삐 움직였으나, 재앙이 덮쳐오는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몸 전체로 서서히 퍼져 나가는 보라색 균열과 동시에 느껴지는 고통. 하지만 몸에 느껴지는 고통은 정신에 느껴지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살면서 겪은 크고 작은 모든 절망이 하나가 되어 자신을 집어삼키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이대로 나 자신으로 있는 것을 포기하면 편해질 수 있을까. 누군가가 귓가에서 이 절망에 몸을 맡기라고, 그러면 편해질 수 있다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아, 나는……. 죽음의 기로 앞에서 인간은 생각보다 본능에 충실했고, 절망에 몸을 맡기려는 찰나였다. 그때, 하루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좋아해주던 보육원 아이들과 자신의 꿈을 응원해주던 친구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래, 나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해주는 사람이었잖아. 그러니까 여기서 이렇게 절망할 순 없어! 자신을 집어삼키려는 괴물을 떨쳐냈다고 생각했을 때, 하루나는 그대로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하늘은 이미 완전히 밝아져 있었다.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이제 무언가의 힘이 생겼음을 느끼며 하루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방금 전 일은 꿈이었을까? 주위에 오롯이 남아있는 참상은 방금 전 일이 꿈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결의를 다진 하루나는 주먹을 꼭 쥐었다.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전해주기 위해 기꺼이 괴물─팬텀─과 맞서싸우겠노라고.
2.
조금은 특별해진 일상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오늘은 장이나 볼까 싶어 하루나는 사람이 북적거리는 상점가를 천천히 걷고 있었다.
“오늘 따라 사람이 많네…….”
무슨 이벤트라도 하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던 하루나의 귀에 아름다운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아무래도 이 연주가 사람이 붐비는 이유였는지 유독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미 사람들이 제법 모여 있던 탓에 연주자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곳에 울려 퍼지는 우아하면서도 서글픈 바이올린 연주는 하루나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마치 홀린 것처럼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연주를 듣고 있던 하루나는 사람들의 박수소리를 듣고 나서야 연주가 끝난 것을 깨닫고 자신도 박수를 치며 그의 연주에 화답했다. 여기서는 못 보던 사람인데, 또 만날 수 있을까? 아직도 마음 속에 그의 연주가 남아 있는 탓에 아쉬움을 느끼던 하루나는 별안간 들려온 비명소리에 급하게 고개를 들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일이 없다고 하는 말을 새삼 증명이라도 해주는 것처럼 팬텀이 난동을 피우는 게 보였다. 하루나가 황급히 변신하려는 순간, 너무나도 화려한 나머지 처절하게까지 들리는 바이올린 연주가 귀를 엄습했다. 하루나에게는 그저 슬프게만 느껴지는 연주가 팬텀에게는 꽤나 치명적이었는지 귀를 감싸고 괴로워하던 팬텀은 이내 날카로운 무언가에 베이는 것으로 절명했다. 졸지에 변신조차 하지 못하고 손 놓고 바라보기만 한 하루나는 급하게 팬텀을 쓰러뜨린 보라색 마법사의 뒤를 쫓았다. 하루나가 쫓아오는 걸 눈치챘는지 그는 변신을 풀고 천천히 하루나를 뒤돌아보았다. 어디서 본 적 있는 얼굴인데, 누구지? 기시감을 느낀 하루나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곧 그가 아까 상점가에서 연주를 하던 바이올리니스트였음을 기억해냈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고민하던 하루나는 잠시 자신을 보고 있던 그가 몸을 돌려 돌아가려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호, 혹시 마법사세요!?”
이크.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나도 크게 나온 목소리에 하루나는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당황한 하루나와 달리 그는 딱히 개의치 않는 듯 다시 하루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대답에 화색이 된 하루나는 조심스레 입을 가린 손을 떼고 다시 입을 열었다.
“역시……! 저는 하루나 유리에라고 해요. 이렇게 동료 분을 만나게 돼서 정말 기뻐요! 실례가 아니라면 이름을 여쭤봐도 될까요?”
“……로렌츠 헤르즈리히라고 합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당신의 동료는 될 수 없을 것 같네요.”
“네? 그게 무슨 말ㅆ…….”
하루나가 미처 캐묻기도 전에 로렌츠는 하루나에게 인사를 한 후 그 자리에서 멀어져 갔다. 명백한 거절의 말에 하루나는 차마 로렌츠를 따라갈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그가 있던 곳만을 쳐다보았다.
* * *
“안녕하세요, 저희 또 만났네요!”
“네, 그러게요.”
형식적인 예의만 차리는 로렌츠의 모습에 개의치 않고 하루나는 반가운 듯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어쩐지 곤란해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뜨려는 로렌츠를 붙잡은 하루나는 여전히 환한 낯으로 다시 말을 걸었다.
“그래도 이렇게 만나는 것도 인연인데 같이 싸우는 건 어떠세요? 혼자보다는 둘이 낫다고 생각하는데.”
“저번에도 말씀 드렸지만 사정이 있어서 협력은 무리일 것 같네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루나의 말에 로렌츠는 작게 미소 지으며 여느 때와 다름없는 거절의 말을 남기고 먼저 자리를 떴다. 이제는 익숙해진 거절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포기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이전에 알려준 이름 외에는 어떤 질문에도 답을 해주지 않는 그였지만, 어쩐지 하루나는 그런 로렌츠를 그대로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사람, 너무 슬픈 미소를 짓고 있는걸.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에 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하루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항상 웃는 낯의 그였지만, 하루나에게는 어쩐지 그 미소가 무언가 슬픔을 가지고 있는 차가운 미소라고 느껴진 탓이었다. 무슨 슬픔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도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마치 다짐을 되새기듯이 고개를 끄덕거린 하루나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쭉 기지개를 폈다.
3.
그 날은 하루나가 우연을 가장해 로렌츠와의 만남을 거듭하던 나날 중 하루였다. 제법 격렬한 전투 끝에 가까스로 팬텀을 쓰러뜨린 하루나는 팬텀의 습격을 받은 게이트가 절망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목격했다. 로렌츠 역시 그 광경을 목격했는지 천천히 그 사람 쪽으로 걸어가 인게이지 링을 끼워줄…… 터였다. 그러나 하루나의 예상과 달리 로렌츠는 괴로워하는 게이트를 그저 바라보다가 보라색 균열이 점점 커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바이올린을 고쳐 잡을 뿐이었다. 저렇게 놔두면 분명 저 사람도 팬텀이 되고 말 텐데! 다급해진 마음에 지친 것도 잊고 황급히 게이트에게 다가간 하루나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인게이지 링을 그에게 끼워주었다.
*
무사히 언더월드의 팬텀을 쓰러뜨린 하루나는 아직 그 자리에 남아있던 로렌츠를 굳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절망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싸우는 게 마법사 아니었나? 하루나로서는 방금 전의 그의 행동을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냐, 이 사람도 사실 사정이 있을지도 몰라. 괴로운 표정을 지은 하루나는 조심스럽게 로렌츠에게 물었다.
“왜……, 어째서 이 사람을 구하려 하지 않은 거죠? 당신도 마법사잖아요…….”
“……저는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 없어요. 누군가를 구해낼 수도 없죠. 저는 그저, 팬텀을 없앨 뿐이랍니다.”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아니, 어쩐지 평소보다 슬퍼 보이는 눈으로 로렌츠는 그렇게 답했다. 순간 말을 잃고 만 하루나는 멍하니 로렌츠를 바라보고 있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 있어요. 분명 로렌츠 씨가 희망인 사람도 있을 거구요. 그러니까…….”
“……실례하겠습니다.”
서글프게 웃어 보인 로렌츠는 하루나의 말을 끊고서 그대로 그 자리에서 떠나버렸다. 평소라면 그런 말에도 굴하지 않고 쫓아갔을 터였지만, 오늘은 손을 뻗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4.
그날 이후로 하루나는 로렌츠를 찾아가는 일을 그만두었다. 혼란스러운 탓이었다. 마법사는 당연히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하루나에게 이전의 로렌츠의 반응은 너무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 사람을 동료라고 생각해도 괜찮은 걸까?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은 그저 또 다른 질문만을 불러들일 뿐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하루나는 문득 만약 지난 일과 같은 일이 또 벌어지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당시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그 사람을 절망에서 구해낼 수 있었지만, 만약 그 자리에 자신이 없었다면 그 사람은 그대로 절망했을 거라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하루나는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로렌츠를 찾아가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무작정 그를 찾으러 떠났다.
*
무작정 로렌츠와 처음 만난 상점가에 도착한 하루나는 익숙한 바이올린의 선율을 듣고 그쪽으로 달려갔다. 막 연주를 마친 것처럼 보이는 그는 하루나를 발견하고서는 늘 그랬듯이 정중히 인사를 해보였다.
“오랜만이네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아뇨, 특별한 일은 없었어요.”
너무나도 태평해보이는 그의 모습에 하루나는 맥이 쭉 빠져 저도 모르게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알면 알수록 혼란스러운 사람이었다. 딱히 자신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도 아니지만 친절한 사람, 절망과 맞서 싸우지만 희망을 구하지는 않는 사람. 하루나의 퉁명스러운 태도에 개의치 않는 듯 로렌츠는 ‘그럼 다행이네요.’라고 대답하고 가만히 웃어 보였다. 그 미소가 어쩐지 이전에 본 서글픈 미소와 겹쳐 보여 하루나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로렌츠 씨는 어떤지 몰라도, 저는 로렌츠 씨와 가까워지고 싶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저는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야……, 걱정되니까요!”
“걱정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마찬가지로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더 이상 희망이 남아 있지 않아요. 앞으로 가질 일도 없겠죠. 마법사지만 희망을 잃어버린 마법사인 저는 그저 빈 껍데기에 가까운 존재일 뿐입니다. 분명 상냥한 당신은 이런 저를 동정하고 연민하겠죠. 위로해주고 싶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건 저를 더 괴롭게 만들 뿐이에요. 그러니 제게 가까이 다가와주지 말아주세요. 그게 진정으로 절 위하는 길이니까요.”
“아니에요!”
어쩐지 차갑고 매섭게 보이는 로렌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하루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그의 솔직한 대답 덕분에 그동안 품고 있던 의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깨달은 기분이 들었다. 하루나는 망설이지 않고 마음 속에 떠오른 답을 그대로 입에 옮겼다.
“저는 당신을 불쌍하게 생각해서 이러는 게 아니에요. 그저 당신이 품고 있는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은 것뿐이에요. 그게 바로 동료라는 거니까요. 당신을 걱정하는 건 맞지만, 그건 당신이 불쌍한 사람이라서가 아니에요. 당신은 소중한 제 동료니까. 그래서 걱정하는 것뿐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하루나의 눈동자에서는 결연함과 올곧음이 느껴졌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자신을 걱정하는 눈동자를 주시하던 로렌츠가 무언가 말하기 위해 입을 열려는 찰나, 귀를 찢는 비명소리와 함께 팬텀이 난동을 부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는 당신이 절망한다고 해도 구해주지 않을 거예요. 제게는 그런 자격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저를 동료라고 생각하나요?”
하루나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변신하고 팬텀과 맞서 싸우려고 하는 찰나, 로렌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뒤를 돌아 본 하루나는 일말의 주저함 없이 대답했다.
“그럼요. 저는 모든 사람의 희망을 지키는 마법사예요. 비록 당신은 이제 자신은 희망을 가질 수 없다고 하지만, 그런 당신에게도 희망을 전하는 게 제 임무이자 제 희망이랍니다. 그러니 제 걱정을 하실 필요는 없어요. 저는 절대 절망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저는 당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동료라고 생각했답니다. 지금 와서 그 믿음이 변하지 않아요. 아니, 오히려 솔직히 얘기해줘서 더 고마운걸요!”
“…….”
“이건 연민이 아니에요. 당신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는 당신을 연민하지 않아요. 저는 당신도 충분히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걸요. 아뇨, 이미 누군가는 당신을 희망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죠. 이미 한 번 절망을 이겨냈다는 게 바로 그 증거랍니다.”
말을 마친 하루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팬텀에게 돌격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어쩐지 헬멧 속의 그녀의 얼굴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
“……당신을 해칠 생각은 없어요. 그렇지만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그때는 제게서 떠나주세요.”
별 일 없이 팬텀을 무찌른 로렌츠는 하루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간만에 느끼는 맑고 순수한 선의였다. 아니, 간만이 아니라 처음 느끼는 걸지도 몰랐다. 한 번 절망을 맛본 그날에 더 이상 누군가와 이어지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그녀의 순수한 마음은 이 결심을 흔들리게 하는 데 충분했다. 누군가를 알고 싶다는 건 이런 감정이었나. 낯선 느낌에 로렌츠는 속으로 슬쩍 웃었다.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정말……. 당신은 너무 순진한 것 같아요.”
“신뢰가 깊은 거라고 해주시겠어요?”
“그게 바로 순진하다는 거랍니다.”
그렇게 말한 로렌츠는 변신을 풀고 하루나에게 잘 부탁한다며 손을 내밀었다. 맞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손뿐만 아니라 마음을 녹이기에도 충분한 따스함이었다.
* * *
♪Baby, baby, if he hears you,
As he gallops the house,
Limb from limb at once he’ll tear you,
Just as pussy tears a mouse.
And he’ll beat you, beat you, beat you,
And he’ll beat you all to pap,
And he’ll eat you, eat you, eat you,
Every morsel snap, snap, snap♪
그날, 절망이 삼켜버린 것은 누구? 그의 소중한 것? 아니면 그 자신?
* * *
로렌츠의 이야기를 들은 하루나는 시선을 내려 로렌츠의 왼손을 바라봤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하루나는 어쩐지 로렌츠의 왼손이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과 동시에 하루나는 마음 한구석에서부터 슬픔이 넘쳐 흐르는 것을 느꼈다. 무엇을 이렇게 나를 슬프게 만드는 걸까? 한순간에 모든 걸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냐, 내가 슬프게 느끼는 건…….
“……그동안 외롭지는 않았나요?”
“네?”
“혼자서도 괜찮았나요? 또 다시 소중한 사람을 잃을 바에는 혼자인 게 낫다고 생각했나요?”
“…….”
“하지만 전 그럼에도 당신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아니, 떠날 수가 없어요……. 희망을 가지지 않는다고 해서 절망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희망은 절망하기 위해서 있는 게 아닌, 절망을 이겨내기 위해서 존재하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저는, 당신의 희망이 되고 싶어요. 아니, 당신의 희망이 되겠어요. 부디, 그러게 해주세요…….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 넘칠 것 같은 얼굴로 조심스럽게, 그러나 결의가 느껴지는 얼굴로 하루나는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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