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1차 (34)
Lucida Stella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폭력, 유혈, 자살 소재 주의 *감독판 상정 “큭…….” 변신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땅바닥에 엎어진 프리드리히는 손톱으로 바닥을 긁으며 자신을 쓰러뜨린 팬텀을 노려보았다.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팬텀은 높낮이조차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단신으로 나를 여기까지 몰아붙이다니, 그 의지만큼은 칭찬할 만하군. 아주 대단해.” “그, 러셔……? 근데 나, 는 여기서 끝이, 라고 말 안 했…….” “그러니 방해가 되는 존재는 이 자리에서 없애버리는 게 좋겠지.” 프리드리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팬텀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들어올려 근처의 벽으로 집어 던져버렸다. 몸에 가해진 충격에 검붉은 피를 한 움큼 토해낸 프리드리히는 마치 미끄러지듯이 천천히 주저앉았다. 머리를 세게 부딪쳤는지 머리 쪽..
절망한 이후의 나는 또 절망했던가. 이제는 그런 것조차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무엇도 바라지 않고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 자체를 포기한다는 게 절망이라면 지금의 나는 역시 절망한 게 맞는 걸까. 아니, 희망과 절망 그 둘 중 어느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이었다. 자신은 그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존재였다. 안에 든 것 따위 하나도 없이, 그저 존재하는 게 전부인 텅 비어버린 무언가. 주어지는 것은 오로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존재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뿐이었다.그렇다면 나는 왜 여기 있는 걸까. 이런 질문도 이제는 아무 의미를 갖지 않았다. 말이라는 형태를 구성하고 있지만 의미를 잃어버린 질문이었다. 껍데기만 남은 자신처럼 저 말 역시 껍데기만 남아 그저 자신과 함께할..
♪I see the moon, and the moon sees me. God bless the moon, and god bless me.♪ 1. 일의 시작은 아무런 예고 없이 일어난 일식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갑작스런 천문현상이겠거니 하며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것이 곧 일어날 재앙의 전조인지도 모르고. 불현듯 하늘이 어두워지는 것과 동시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쓰러져갔다. 쓰러진 채 그대로 움직임이 멈춰버린 사람들, 몸에 보라색 균열이 생기는 듯 싶더니 돌연 괴물로 변모하는 사람들. 별이 지는 것과 함께 각지에서 일어나는 비극. 말 그대로 재앙(disaster)가 따로 없었다. 도망가야 해. 본능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어 하루나는 두 다리를 바삐 움직였으나, 재앙이 덮쳐오는 속도..
‘한 번이라도 「나」를 친구라고 생각한 적 있어?’‘네게 있어 「나」는, 그저 부담스러운 사람일 뿐이었잖아.’‘조금이라도 더 상냥하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웠어?’‘먼저 다가와줄 수는 없었던 거야?’‘───너를 저주해. 너를 원망해! 너 같은 건 그냥 절망해버려!’절규와 같은 외침이 멎음과 동시에 로렌츠는 저도 모르게 눈을 떴다. 주위에 흐드러지게 핀 하얀 꽃들이 바람에 천천히 일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하얀 꽃의 무리는 마치 이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그 가운데 홀로 우두커니 서있는 자신이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막 들려고 할 때쯤, 어디선가 날아온 날카로운 일격이 허리춤에 꽂히는 게 느껴졌다.“윽…….”“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여긴 또 어디람.”결국 길을 잃어버리고 만 마나미는 입을 삐죽이며 들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처음으로 혼자, 그것도 자유 여행을 떠난 것은 좋았다. 생각 이상으로 들뜬 탓에 여기저기 쏘다니다가 이렇게 길을 잃는 것은 좋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낯선 곳이어서 그런지 지도 앱도 딱히 도움이 되지 않았고, 사람도 거의 지나다니지 않아 길을 물어보는 것도 불가능했다. 어디로 가야 큰길이 나오지? 너무 이리저리 헤맨 탓에 점점 고파오는 배를 문지르던 마나미의 눈에 어느 작은 빵집이 눈에 띄었다.“아, 모르겠다. 일단 먹고 생각할래!”마침 배도 고프겠다, 안에 누가 있을 테니 그 사람에게 길도 물어보면 되겠다고 생각하며 마나미는 아무런 주저 없이 빵집의 문을 열어제꼈다. 경쾌하게 울리는 종소리와 코..
“여기가 바로 프리파라……!” 손에 들고 있던 프리티켓을 다시 한 번 꼭 쥐며 아이카는 프리파라 안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라면 꿈도 꾸지 못했을 검은색의 숏 드레스가 아직까지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입고 라이브를 하면 되는 건가? 그럼 나도 언젠가 아모로시아처럼……! 자신이 여기까지 온 이유를 상기시킨 아이카는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방금 전까지 느끼던 어색함을 집어던지고 머리에 쓴 티아라를 고쳐쓰며 당당한 발걸음으로 프리파라TV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오늘도 감사했어요~! A million Thank you~!” “라이브 잘 즐겨주셨나요? 다음에도 또 만나요!” “다음 라이브도 기대해줘~!” 터져나오는 주위의 함성에 지지 않을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아이카는 손에 ..
“너, 나랑 얘기 좀 해.” “갑자기 무슨 얘기야? 아니, 그전에 손목 좀…….” 에인의 말에 비로소 자신도 모르게 손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애슐리는 손에 주고 있던 힘을 푸는 대신 에인을 빤히 쳐다보며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언제부터 알았어?” “……거의 바로.” “그럼 이제 좀 괜찮은 거야? 아님?” 지금의 애슐리에게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몇 번 경험으로 잘 알고 있는 에인이 솔직하게 대답하자, 애슐리는 태도를 바꿔 이번엔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애초에 계속 숨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언젠가는 말해야 한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기에 에인은 그 다음 질문에도 솔직하게 대답했다. “잘 모르겠어. 다른 사람은 아직 좀, 그런데.” “그럼 그 사람만 괜찮은 ..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그래서 당신, 누구예요?” “내 이름은-” 그렇게 말하고 헨리는 주위를 몇 번 둘러보며 근처에 아무도 없음을 재차 확인했다. 그래도 역시 안심이 되지 않는 듯 그는 애슐리에게 몸을 가까이 하고 목소리를 낮춰 그녀에게 작게 속삭였다. “헨리, 헨리 노트야.” “하?” 헨리의 이름을 들은 애슐리는 한참동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한손으로 이마를 감싸고는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목구멍 바로 위까지 올라온 여러 말을 가까스로 억누른 애슐리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입을 열었다. “저기요, 저 그쪽 신고해도 돼요?” “잠깐, 어째서?” “아니, 사칭할 사람이 없어서 황제 폐하를……. 그 분 함부로 사칭하면 모가, 아니지. 목이 뎅겅하고 날아가거든요? 놀리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아까 웬만큼 높으신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