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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ida 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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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어-” “아, 왔어? 고생했……, 잠깐, 왜 짐을 손님이 들고 있는 건데!?” “어……? 그, 그게……, 그, 절대 내가 시키거나 그, 그런 건 아니니까!? 오, 오해 하지 마!” “아하하, 오랜만-” 헨리가 짐을 들고 있는 것에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애슐리에게 태연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주는 헨리를 보며 에인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문 열기 전에 짐 달라고 했어야 하는 건데, 순간 깜빡해버리고 말았다. 적어도 그랬다면 이렇게나 놀라지는 않았을 텐데. 그나마 다행인지 금방 평소의 페이스를 되찾은 애슐리는 장난스럽게 헨리한테 말을 걸었다. “그러게요, 오랜만이네요! 이렇게 짐까지 들어 주셨으니 오늘은 무료로 대접해드릴까요? 대신 메뉴는 제맘대로인 걸로-” “물론! 오늘은 공짜 식사 대접 ..
저녁 시간 준비를 마치고 주방에서 나온 애슐리는 카운터에 멍하니 앉아 있는 에인의 뒤에 슬쩍 다가가 그의 볼을 쿡 찔렀다. 생각에 깊게 빠져 있었던 탓인지 화들짝 놀란 에인의 모습을 보고 작게 웃은 애슐리는 문쪽을 바라보며 에인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슬슬 올 때가 됐지?” “누구 얘기하는 거야?” “누구겠어? 뭐, 그 손님, 잊을 만하면 왔으니까 그렇게 안 기다려도 될 텐데 말이야-” “……지, 지금 무슨 얘기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리고 잊을 만하면 오는 손님이 한두 명인 것도 아니고…….” “어라-, 지금 시치미 떼는 거야? 네가 나한테? 척하면 착이거든요~ 거기다 넌 생각하는 게 바로 얼굴에 드러나서 모르는 게 더 이상하다고? 그래서, 저번엔 무슨 얘기했어?” “벼, 별 얘기 안 했거든..
“한동안 누가 나 찾으면 나 없다 그래, 알겠지?” “갑자기 왜? 아니, 그전에 너 찾을 만한 사람이 뭐 얼마나 있다고.” “조, 좀 그럴 만한 사정이 있으니까 그러지! 어쨌든 알겠지!? 꼭 없다고 그래야 돼!” “아, 잠깐. 그럼 일은 어쩌고?” “그건 최대한 알아서 해볼 테니까……. 애초에 나 억지로 여기서 일하게 만든 게 누군데…….” 영문을 모르겠는 일에 애슐리가 머리를 긁적이며 수긍하려는 순간, 일에 관한 것이 생각난 듯 애슐리가 에인을 사나운 눈으로 바라보자 에인은 시선을 피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애슐리는 잠시 에인을 째려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다면 일단 그렇다고 할 테니까. 그렇다고 일 제대로 안 하면 월급 안 줄 거야!” “네네-” 애슐리의 따..
“안 주무실 겁니까?” “어, 아니, 잘 거긴 한데……. 나 진짜 여기서 자라고?” “혹시 불편하신 점이라도……?” “불편할 건 없는데, 오히려 너무 편할 것 같긴 한데…….” “그럼 피곤하실 텐데 얼른 주무시는 편이…….”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뭐가 잘못됐냐는 듯이 눈을 깜빡거리는 에인을 보며 헨리는 잠시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잘못된 건 확실히 없었다. 침대는 편안해 보였고 침구들은 깔끔하게 정리돼있었다. 이쪽은 문제될 게 없었다. 문제는 다른 쪽에 있었다.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여기는 원래 에인이 자는 데 같은데……? 내가 여기서 자면 에인은 어디서 자?” “저요? 전 헛간에서 자면 됩니다만.” “에인이 아니라 내가 거기서 자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나보다 에인이 더 힘들었을 테고..
시간이 제법 흘렀는지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어째 하늘이 꾸물꾸물 흐려지는가 싶더니 얼마 안 가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단 급한 대로 후드를 뒤집어 쓰기는 했으나 지금 내리고 있는 비는 아무리 봐도 잠시 내리다 그칠 요량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날도 어두워졌는데 비까지 내리다니, 부슬부슬 내리는 비라면 그냥 맞고 어떻게든 돌아가겠지만 쏟아지는 걸 보아하니 얼른 하룻밤 지새울 곳을 찾지 않으면 얼마 안 가 속까지 다 푹 젖을 게 뻔했다. 급한 대로 주위를 돌아보았지만 딱히 눈에 띄는 간판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뭔가 보일 때까지 뛸까? 아냐, 그전에 다 젖을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본 헨리는 에라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근처의 집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그게 갑자기 ..
막 정오가 지날 무렵이었다. 오랜만의 외출에 들떠서였을까, 헨리는 그제서야 자신이 아침도 제대로 먹고 나오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런 것치고는 그렇게까지는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더 돌아다니기 위해서라도 뭔갈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근처 식당에 들어가자, 맛있는 냄새가 풍겨와 어쩐지 더 배가 고파진 것 같기도 했다.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할 요량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그때에 한쪽에서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러니까 시, 시간 없다고…….” “아, 진짜 계속 그렇게 튕길 거야? 끝나고 딱히 할 일 없는 거 다 아는데?” “이, 일단 이 손부터 좀 놓고 얘기를……!”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한눈에 봐도 어딘가 불량스러워 보이는 남자와 당황스런 표정을 지..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도착한 에인은 늘 그랬던 것처럼 바위 주위를 맴돌다가 문득 움직임을 멈췄다. 이제 아무리 기다려도 그 사람은 오지 않는데, 올 수 없는데. 그러니 더 이상 이곳에 올 이유 따윈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정신을 차려보면 이곳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이유는. 한참을 그렇게 의미없이 맴을 돌던 에인은 미처 사람이 가까이 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저, 저기, 괴물!” “사라져!” 질색하는 목소리와 함께 날아온 돌멩이 하나가 에인의 뺨을 스쳐지나가며 작은 생채기를 남겼다. 급하게 몸을 숨긴 에인이 손가락으로 상처를 훑으니 약간의 피가 손가락에 묻어 나왔다. 아프지는 않았다. 인어에게 이 정도 상처 따위는 물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바로 낫는 것이었다. 그것보다는……. “……괴물, ..
방에 들어와 문을 잠근 에인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입을 막고 헛구역질을 계속했다. 식사도 거의 하지 않아 토해려 해도 토할 것조차 없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 구토감이 밀려오는 건지. 그렇게 한참을 비워지지 않는 속을 비워낸 에인은 손으로 입을 문지른 후 억지로 몸을 일으켜 그대로 침대에 엎어졌다. 옷을 갈아입거나 화장을 지우거나 머리를 풀거나 하다 못해 안경을 벗을 여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 있지? 어차피 모든 게 불편한데. 그렇다. 모든 게 불편했다. 지금의 격식 차린 차림이 아니어도, 머리를 풀어헤치고 잠옷으로 갈아입어도 그것조차도 불편하게 느껴졌다. 분명 예전에 입던 옷보다 몇 배나 좋은 옷감으로 만든 옷이어도, 예전에 자던 침대보다 몇 배나 부드러운 침대에서 잔다 해도..
※고어 주의... 사람 하나 대동하지 않은 채 에인은 띄엄띄엄한 횃불만이 빛이 전부인 계단을 내려갔다. 절반쯤 내려 갔을까, 밑에서 올라오는 지독한 냄새에 에인은 얼굴을 찌푸렸다. 아직 반은 남았는데도 이 지경이라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대충은 알 것 같았다. “와, 왕비님!? 이, 이런 곳엔 어찌…….” “뭐, 저라고 해서 이런 곳에 오면 안 되는 법 같은 건 없지 않습니까.” 놀란 듯한 고문관의 말에 에인은 태연하게 대꾸하며 벽 한쪽에 묶인 남자를 바라보았다. 분명 아까의 그 지독한 냄새의 근원은 이 남자일 것이다. 에인은 잠시 시선을 돌려 고문관들에게 말했다. “……미안, 지금 예의를 차리기가 좀 뭐하네.” “아뇨, 괜찮습니다. 왕비님이신걸요.” “뭐……, 됐고. 잠깐 대화를 하고 싶으니까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