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ida Stella
금빛 정원의 얼음꽃 -6- 본문
“다녀왔어-”
“아, 왔어? 고생했……, 잠깐, 왜 짐을 손님이 들고 있는 건데!?”
“어……? 그, 그게……, 그, 절대 내가 시키거나 그, 그런 건 아니니까!? 오, 오해 하지 마!”
“아하하, 오랜만-”
헨리가 짐을 들고 있는 것에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애슐리에게 태연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주는 헨리를 보며 에인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문 열기 전에 짐 달라고 했어야 하는 건데, 순간 깜빡해버리고 말았다. 적어도 그랬다면 이렇게나 놀라지는 않았을 텐데. 그나마 다행인지 금방 평소의 페이스를 되찾은 애슐리는 장난스럽게 헨리한테 말을 걸었다.
“그러게요, 오랜만이네요! 이렇게 짐까지 들어 주셨으니 오늘은 무료로 대접해드릴까요? 대신 메뉴는 제맘대로인 걸로-”
“물론! 오늘은 공짜 식사 대접 받아도 되냐고 물어보려 그랬는데 먼저 말해주다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네.”
“아하하, 척하면 척이죠? 그런데 그래서 둘이 무슨 사이-? 그냥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음……, 같은 침대에서 자본 적 있는 사이?”
“자, 잠깐!?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 언니가 뭘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고 그런 일은 절대 없었으니까!?”
“일단 들어가서 얘기해. 아, 짐은 저 주시면 되고요.”
거의 빼앗다시피 헨리에게서 짐을 받아들은 애슐리는 짐을 들지 않은 쪽 손으로 에인의 손목을 붙들고는 거칠게 그를 끌고 안쪽으로 들어가버렸다. ‘아, 잠깐……! 너무 세게 잡지 마, 아프단 말야!’ 라며 불만스럽게 말하면서도 그 이상의 저항은 하지 않고 순순히 끌려가는 에인의 모습을 보면서 헨리는 괜히 뒷머리를 긁적이며 근처에 있는 자리에 걸터 앉았다. 장난이 너무 심했나? 아, 좀 곤란한데.
*
“그래서 무슨 일 있었어?”
주방으로 들어온 애슐리는 재료를 정리하면서 마치 ‘오늘 저녁은 뭘로 할래?’ 라고 묻는 것 마냥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에인은 이럴 때의 애슐리는 화가 거의 머리 끝까지 차있는 상태임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충분히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말없이 깊게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잠시 적당하게 꾸며댈까 고민도 했지만 거짓말을 해봤자 화를 더 북돋우면 모를까, 이 상황이 나아질 리가 없음을 깨달은 에인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입을 열었다.
“그냥 저번에, 비 많이 와서 하룻밤 재워줬어. 그게 다야.”
“근데 같은 침대에서 잤다고?”
에인의 대답에 야채를 썰고 있던 애슐리가 고개를 들어 에인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서슬 퍼런 눈빛에 에인은 순간 겁에 질려 한 발짝 뒤로 물러났지만, 자신은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것 마냥 이내 정신을 다 잡고 애슐리를 바라보며 그 질문에 대답했다.
“잘 때는 다른 데서 잤어. 저분은 침대, 나는 헛간. 그런데 일어나니까 같은 침대였어. 그게 다야.”
“정말?”
“응.”
“다른 일은 없었고?”
“다른 일이 있었으면 지금 내가 이러고 있겠어?”
“그건 그렇네.”
이제서야 어느 정도 진정한 듯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온 애슐리는 다시 요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실 별 일이 없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저렇게까지 반응할 건 없잖아? 괜히 무섭게시리. 투정부리듯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오물거리던 에인은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애슐리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휙 쳐들어 애슐리를 바라봤다.
“뭘 그렇게 놀라. 내 욕 하고 있었냐?”
“그, 그런 거 아니거든!?”
“한 것 같은데……. 아니,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뭐 하나만 더 물어봐도 돼?”
“뭔데?”
“너, 저 사람 좋아해?”
“그, 그, 그럴 리가 없잖아!? 그,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그, 그거랑 이건 다르니까……!”
“안 좋아하면 안 좋아하는 거지, 그렇게까지 반응할 필요는 없지 않아? 유난스럽긴. 뭐, 그렇다면 됐지만.”
“……으.”
그제서야 자신의 반응이 좀 유난스러웠던 것을 깨달았는지 얼굴을 붉히며 입을 틀어막는 에인을 보고는 애슐리는 픽 소리를 내며 웃었다. 대화하는 동안 어느새 정식 하나의 플레이팅까지 마친 애슐리는 에인에게 슬슬 손님 받을 준비를 하라고 말하며 주방을 빠져나왔다.
* *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지만? 와, 그 짧은 시간에 이걸 다 만든 거야? 대단한데.”
“그야 이쪽에서 일하고 있는걸요? 아, 그렇다고 대충 만들었다든가 그런 건 아니니까 안심하고 드셔도 돼요! 아,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잠깐 옆에 앉아도 될까요? 물론 먹는 데 신경쓰인다면 안 그러겠지만.”
“응? 괜찮아. 그럼 잘 먹겠습니다-”
근처에서 의자를 끌어다 앉아 헨리가 어느 정도 그릇을 비울 때까지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애슐리는 헨리가 입가를 닦는 모습을 보고서는 지나가는 것처럼 말을 걸었다.
“있잖아요, 당신 대체 누구예요?”
“응? 그건 갑자기 왜?”
애슐리의 질문에 헨리는 정말 갑자기 왜 그런 걸 묻느냐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했다. 그 반응에 애슐리는 정말 별 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야- 그쪽은 제가 대충 누군지도 알고, 제 이름도 알잖아요? 근데 저는 그쪽 이름도 아직 모르고? 그니까 물어봐도 이상할 건 없을 것 같은데-”
“듣고 보니 그렇네. 그치만 내 이름 알면 아무리 애슐리라도 놀랄 것 같은데?”
“글쎄요, 그렇게까진 안 놀랄 것 같은데.”
“왜?”
“그야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애슐리는 슬쩍 웃었다. 아, 저 표정 저번에 본 그 표정인데. 속으로 곤란하다는 생각을 하며 헨리는 애슐리의 눈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려나?
“그럼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일단 어딘가의 높으신 분? 사실 여기에 은근 높으신 분들도 자주 오거든요. 뭐, 그쪽처럼 직접 오시는 분들은 드물지만? 거의 대부분은 아랫사람 시키거든요.”
“아, 그래?”
“그 반응을 보니 틀린 것 같진 않네요. 그러니까 그쪽이 원하는 반응은 딱히 안 나올 거예요.”
말을 마친 애슐리는 웃음기를 거두고 헨리를 바라봤다. 아, 이래서 둘이 자매인 건가. 다시 봐야겠는걸. 헨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웃는 낯으로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자, 애슐리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당신, 누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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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이 바빠서...그만...(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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