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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ida Stella

금빛 정원의 얼음꽃 -3- 본문

1차/[헨리에인]금빛 정원의 얼음꽃

금빛 정원의 얼음꽃 -3-

시나모리 2017. 1. 1. 16:39

 “안 주무실 겁니까?”

 “어, 아니, 잘 거긴 한데……. 나 진짜 여기서 자라고?”

 “혹시 불편하신 점이라도……?”

 “불편할 건 없는데, 오히려 너무 편할 것 같긴 한데…….”

 “그럼 피곤하실 텐데 얼른 주무시는 편이…….”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뭐가 잘못됐냐는 듯이 눈을 깜빡거리는 에인을 보며 헨리는 잠시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잘못된 건 확실히 없었다. 침대는 편안해 보였고 침구들은 깔끔하게 정리돼있었다. 이쪽은 문제될 게 없었다. 문제는 다른 쪽에 있었다.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여기는 원래 에인이 자는 데 같은데……? 내가 여기서 자면 에인은 어디서 자?”

 “저요? 전 헛간에서 자면 됩니다만.”

 “에인이 아니라 내가 거기서 자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나보다 에인이 더 힘들었을 테고, 거기다 여기는 에인 집이잖아?”

 “딱히 상관없습니다만……. 손님도 힘드셨을 테고, 하루쯤 침대에서 안 자도 괜찮으니까요.”

 “아니, 그래도……. 내가 미안하니까 그러지.”

 “전 정말 괜찮습니다. 거기서 안 자본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변명이 될 만한 거리를 찾기 위해 헨리는 재빨리 방 이곳저곳을 훑어보았다. 그러고 보니까 저 침대, 둘이 자도 될 것 같은데. 안 닿게 최대한 떨어져서 잔다고 하면 괜찮으려나? 아무리 봐도 저쪽도 질 생각은 없어 보이고.

 “안 주무실 겁니까?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아, 잠깐만! 정 그렇다면 그냥 여기서 같이…….”

 “안녕히 주무십시오.”

 말을 마칠 여지조차 주지 않고 휙 하고 돌아서는 에인의 뒷모습을 보고 헨리는 몇 번 고개를 젓고는 침대에 누워버렸다. 아, 몰라. 졌다 졌어. 이불을 덮고 눈을 감자 확실히 피곤했는지 헨리는 금세 잠이 들었다.


*


 좍좍 퍼붓던 장대비가 어느샌가 그 기세가 약해지고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역시 잠자리가 익숙하지 않았던 탓인지 잠이 깬 헨리는 누운 채로 눈을 비볐다.

 “으음……, 아직 새벽인가…….”

 비도 아직 안 그쳤고, 일어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니까 조금만 더 잘까. 그렇게 다시 눈을 감으려던 헨리는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몸을 일으켜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아직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은 데다가 처음 와보는 곳인 탓에 헨리는 손으로 주위를 이리저리 더듬었다. 한참을 그렇게 더듬고 나서야 그는 자신이 잠들었던 방과 가장 먼 쪽에 있는 방에서 희미한 숨소리를 내며 잠든 에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딱히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역시 피곤했던지 어린 아이나 편하게 잘 만한 공간에서 그는 헨리가 들어온 것도 모르고 곤히 자고 있었다.

 “와, 엄청 가볍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헨리는 에인이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그를 안아 올렸다. 마른 모습을 보고 가볍겠구나 하고 생각은 했지만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더 가벼운 것에 헨리는 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에인을 안은 채로 원래 자신이 자던 방으로 돌아온 헨리는 침대에 에인을 눕히고 옆에서 그를 빤히 바라봤다. 눈처럼 하얀 피부에 굽이치는 검은 머리, 지금은 감고 있어서 안 보이지만 눈은 진한 파란색이었던가. 언니처럼 예쁜 편은 아니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엔 그 언니라는 사람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예쁜 것 같은데. 아까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속으로 가만히 중얼거리며 헨리는 작게 웃었다. 깨어 있을 때 이런 말하면 또 얼굴을 확 붉히겠지. 장난스럽게 웃은 헨리는 등을 돌린 뒤 에인에게서 최대한 떨어져 다시 눈을 감았다.


* * *


 “어라……?”

 잠에서 깬 에인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나 분명 저쪽에서 자고 있었는데, 왜 침대에서 일어난 거지? 나 혹시 몽유병이라도 있나? 그건 아닌데. 계속 고민하던 것도 잠시, 침대 한쪽에서 아슬아슬하게 떨어지지 않고 자고 있는 헨리를 본 에인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고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떨어지지 않게 헨리를 침대 안쪽으로 옮긴 에인은 방을 나가려다 뒤를 돌아보고는 살짝 웃었다.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닐지도.


*


 “어젯밤은 고마웠어! 거기다 아침까지 주다니, 정말 친절하네.”

 “딱히 차린 것도 없었습니다만……. 그럼 안녕히 가시길 바랍니다.”

 “아핫, 매정하기는.”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에인에게 손을 몇 번 흔들어준 헨리는 뒤돌아서 몇 발짝 걸어가다가 뭔가 생각난 듯 걸음을 멈추고 다시 에인한테 다가왔다.

 “뭔가 잊어버리신 거라도?”

 “아니, 잊어버린 건 없는데. 이 말은 해줘야될 것 같아서. 정말 고맙긴 했지만- 앞으로는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혹시 내가 나쁜 사람이면 어쩌려고 그랬어?”

 “그런 거라면 저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만은……. 뭐, 일단 제 나름대로 그쪽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하긴 했으니까요.”

 “그래? 뭘 보고?”

 “……적어도 그럴 때 도와준 사람은 그쪽 외엔 딱히 없었고……. 거기다 어젯밤에 있었던 일만 해도……, 뭔가 나쁜 마음을 품고 있으셨다면 그러지 않으셨겠지요.”

 “그렇게 생각해줬다니 영광이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은 좀 더 조심해서 할 것! 어제 그 말, 조금 위험한 발언이었다고?”

 “글쎄요, 정말 몰라서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응?”

 예상 외의 대답에 헨리는 순간 놀라 눈을 크게 떴으나 이내 다시 싱긋 웃었다. 이거 한 방 먹었잖아-?

 “제법 그럴 듯 했지만 정체를 숨기려면 좀 더 신경쓰시는 게 좋을 겁니다. 자세히 보면 티는 나거든요. 손이라든가, 그런 데서 말이죠. 그래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지금 저를 죽일 생각은 없으신 것 같군요. 그 점은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말이 좀 심했던 것 같으니 사과도 하는 게 나을까? 잠시 고민하던 에인은 사과는 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틀린 말도 아니었다. 자신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지나가는 어느 누구를 붙잡고 말해보라고 하면 백이면 백은 저런 말이 나올 것이다. 오히려 욕이 안 나오면 다행일까. 그런 에인의 생각을 읽은 듯 헨리는 장난스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뭐, 에인이 틀린 말 한 것도 아니고, 나 제법 관대한 사람인걸? 그러고 보니 우리 아직 통성명도 안 했네. 이것도 인연인데 통성명이나 할까?”

 “이미 이름은 아시겠지만……. 에인 길모어라고 합니다. 그쪽은……?”

 “내 이름은 헨리 노트야. 누군지 알려나?”

 에인에게 가까이 다가간 헨리는 에인의 귀에 대고 가만히 속삭였다. 분명 들어본 이름인데……. 어쩐지 익숙한 울림에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에인은 그가 누군지 깨닫고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휘청거렸다.

 “조심해야지, 아가씨. 뭐, 된다면 이건 비밀로 해주면 좋고! 그럼 기회가 된다면 또 보자!”

 “…….”

 에인을 쓰러지지 않게 다시 일으켜준 헨리는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천천히 멀어져갔다. 헨리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본 에인은 정말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아, 일단 유서를 써놔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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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분량조절을 못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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