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ida Stella
금빛 정원의 얼음꽃 -1- 본문
막 정오가 지날 무렵이었다. 오랜만의 외출에 들떠서였을까, 헨리는 그제서야 자신이 아침도 제대로 먹고 나오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런 것치고는 그렇게까지는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더 돌아다니기 위해서라도 뭔갈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근처 식당에 들어가자, 맛있는 냄새가 풍겨와 어쩐지 더 배가 고파진 것 같기도 했다.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할 요량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그때에 한쪽에서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러니까 시, 시간 없다고…….”
“아, 진짜 계속 그렇게 튕길 거야? 끝나고 딱히 할 일 없는 거 다 아는데?”
“이, 일단 이 손부터 좀 놓고 얘기를……!”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한눈에 봐도 어딘가 불량스러워 보이는 남자와 당황스런 표정을 지은 채로 잡힌 손목을 뿌리치려고 하는 여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 아가씨, 분명 여기서 일하는 사람 아니었던가? 정말, 시끄럽게- 고개를 작게 저으며 한숨을 쉰 헨리는 그쪽으로 다가가 종업원의 손목을 잡은 남자의 손을 떼냈다.
“그만 좀 하지? 아가씨가 싫다잖아.”
“뭐야, 넌?”
“아, 그건 알 필요 없고. 적당히 좀 하지? 다른 사람들한테도 민폐고?”
“그러게나 말이에요. 이러는 거 진짜 민폐고?”
자신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낯선 목소리에 헨리가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회색 머리의 여자 한 명이 서있었다. 여자는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두 사람을 몇 번 번갈아 쳐다보더니 사나운 눈빛으로 남자를 쏘아보며 낮게 읊조렸다.
“됐고, 지금 당장 나가주지 않을래요? 난 댁 같은 인간 손님으로 받을 생각 없거든? 적선한 셈 치고 음식값은 안 받을라니까. 어?”
“너, 너 내가 누군 줄 알고……!”
“아, 그건 관심 없고. 뭐 어떻게 해볼 생각이라도 하시나 본데- 댁 같은 인간 굳이 받지 않아도 우리 가게는 충분히 잘 돌아가고? 그 머리 굴려봤자 딱히 방법도 안 나올 텐데 순순히 포기하고 슬슬 꺼져주지?”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위압감에 남자는 이리저리 눈을 굴리더니 얼마 먹지도 않은 음식을 그대로 두고 주춤주춤 도망치듯 나가버렸다. 그렇게 남자를 쫓아낸 여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평한 얼굴로 손을 탁탁 털더니 식탁을 치우다가 문득 생각난 듯 헨리를 돌아보았다.
“에구, 아까워라. 음식은 죄가 없는데……. 아, 맞아! 감사 인사하는 게 늦었네요! 저희 애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잊을 만하면 이런 일이 생겨서 말이에요……. 그렇지. 그래도 너 구해주신 분인데 감사 인사 정도는 하는 게 낫지 않아, 에인?”
“저, 저, 그, 그게……. 으…….”
그렇게 말하며 여자가 자신 뒤에 숨어 있던 에인이라 부른 종업원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쿡 찌르자 에인은 또 다시 당황한 듯 얼굴을 붉히고선 주춤주춤 뒷걸음질로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주방쪽으로 사라져버렸다. 그걸 본 여자는 작게 한숨을 쉬고선 다시 헨리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핫, 죄송해요. 쟤가 좀 수줍음을 많이 타거든요. 아참, 내 정신 좀 봐. 이때까지 주문도 안 받고 뭐한 거람. 주문하시겠어요, 손님?”
“뭐, 감사를 바라고 한 것도 아닌걸요. 사과할 필요까지야……. 음, 근데 주문은 저 아가씨가 받는 거 아니었어요?”
“아……, 쟤가 여기서 일하는 애인 건 맞는데, 쟤가 하는 건 주문 받고 서빙하는 정도라서요. 이왕 주인인 제가 나온 김에 그냥 저한테 주문하시면 된답니다?”
“그렇다면야……, 혹시 추천 메뉴라든가 그런 거 있나요?”
“오늘은 비프 스튜가 잘 됐는데 어떠세요? 다른 거 드시고 싶다면 만들어드릴 수야 있지만!”
“음, 그럼 그걸로.”
“알겠습니다~ 혹시 다른 거 주문하실 건 없으시고요?”
“아뇨, 그걸로 충분하니까.”
“네네! 그럼 금방 가져다 드릴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여자가 주방쪽으로 사라진 후, 헨리는 자리에 걸터앉아 쭉 기지개를 폈다. 어쩐지 더 배가 고파진 것 같네-
* * *
“저, 주문하신 거……, 나왔습니다.”
“어? 이건 시킨 기억이 없는데…….”
“그, 그건……, 그……, 제쪽에서 사는 거니까……. 그러니까…….”
비프 스튜와 함께 딸기가 올려진 케이크 한 조각을 내려놓은 에인은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는 듯 쟁반을 들어 얼굴 반쯤을 가렸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얼굴을 가린 쟁반을 살짝 내리고 말을 이었다.
“……그, 가, 감사 인사가……,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그, 그리고……, 구해주셔서 가, 감사합니다. 그러니 부담 가지시지 말고…….”
“딱히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걸요. 어쨌든 고맙게 잘 먹을게요. 이건 직접 만든 건가?”
부끄러운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다시 쟁반으로 얼굴을 가리는 에인의 모습을 보며 헨리는 안심하라는 듯 웃어 보이며 말했다. 헨리의 마지막 말에 한참 대답을 주저하던 에인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아니요. 음식은 언니가 다 만들어서……. 그, 그, 식사 맛있게 하세요……!”
대답을 마치자마자 아까 전 사라지던 것처럼 거의 도망치듯 자리를 피하는 에인을 보고 헨리는 괜히 어깨를 으쓱하고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저 아가씨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건가?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어쩐지 두려워하는 듯한……. 잘 모르겠네. 그건 그렇고, 음식 맛있네. 나중에 기회 되면 또 올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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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한 편 당 3천자쯤으로 쓰려고 했는데 3천자에서 끊으려니까 흐름이 너무 애매한 곳에서 끊겨서 2천자 정도에서 끊었습니다 다음 편은 더 길 거예요ㅇㅅㅇ/
+)11/30 1차 수정. 원래 생각했던 것과 좀 더 가까워져서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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