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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ida Stella

금빛 정원의 얼음꽃 -4- 본문

1차/[헨리에인]금빛 정원의 얼음꽃

금빛 정원의 얼음꽃 -4-

시나모리 2017. 1. 9. 17:22

 “한동안 누가 나 찾으면 나 없다 그래, 알겠지?”

 “갑자기 왜? 아니, 그전에 너 찾을 만한 사람이 뭐 얼마나 있다고.”

 “조, 좀 그럴 만한 사정이 있으니까 그러지! 어쨌든 알겠지!? 꼭 없다고 그래야 돼!”

 “아, 잠깐. 그럼 일은 어쩌고?”

 “그건 최대한 알아서 해볼 테니까……. 애초에 나 억지로 여기서 일하게 만든 게 누군데…….”

 영문을 모르겠는 일에 애슐리가 머리를 긁적이며 수긍하려는 순간, 일에 관한 것이 생각난 듯 애슐리가 에인을 사나운 눈으로 바라보자 에인은 시선을 피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애슐리는 잠시 에인을 째려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다면 일단 그렇다고 할 테니까. 그렇다고 일 제대로 안 하면 월급 안 줄 거야!”

 “네네-”

 애슐리의 따가운 시선을 못 본 척하며 에인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한다고 딱히 나아지는 건 별로 없겠지만 아예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에인은 괜히 자신의 입을 손으로 두드렸다.


* * *


 점심 시간이 지나 한적해진 어느 날의 오후였다. 이 시간에는 거의 사람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은 의자에 기대 잠시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가 흘렀을까, 애슐리가 슬슬 저녁 시간의 준비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을 그때,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을 본 에인이 갑자기 일어서더니 안쪽으로 도망치듯 들어가버렸다. 뭐야, 갑자기 쟤 왜 저래? 의아한 표정을 짓는 것도 잠시, 애슐리는 금세 원래 표정으로 돌아와 손님을 맞이했다.

 “어라, 한산하네. 지금은 휴식 시간?”

 “딱히 휴식 시간은 아니지만 점심 시간이 지난 지 꽤 됐으니까요. 식사하실 거면 좀 기다리셔야 될 것 같은데, 괜찮아요?”

 “오늘은 딱히 뭐 먹으러 온 건 아니고, 누굴 만나고 싶어서 온 거라. 여기서 일하는 아가씨 지금 없어?”

 “아, 손님은 저번에 그……. 저번에는 감사했습니다-! 근데 지금은 자리를 비운 터라 한참은 기다리셔야 될 것 같은데요. 괜찮으시면 다음에 와 주실래요?”

 “그래? 그럼 기다리지 뭐. 그래도 괜찮지?”

 “으, 음……, 상관은 없지만……. 한 저녁쯤에나 돌아올 것 같은데…….”

 “괜찮아, 괜찮아. 딱히 할 일도 없고. 아, 혹시 아무것도 안 시켜서 그래? 그럼 지금은 그렇게 배 안 고프니까 간단하게 파이 같은 걸로 부탁해-”

 “네, 뭐……, 그러시다면…….”

 자리에 앉아 미소짓는 남자를 보며 애슐리는 직감적으로 그가 에인과 무슨 일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거기다 저런 태도로 나오는 걸 보면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도 눈치챘을 터였다. 분명 저번에 그런 부탁을 한 것도 저 손님 때문이겠지. 근데 대체 왜? 저 손님이 딱히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도와줬는데. 주방으로 들어온 애슐리는 주방에서도 가장 안쪽에 있던 에인을 자기쪽으로 잡아당겼다.

 “아까 그 사람, 갔어?”

 “너, 솔직히 말해. 저 손님이랑 또 무슨 일 있었지?”

 “그, 그게…….”

 “으이구……. 난 분명 너 없다고 그랬는데 너 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한 거 보면 너 여기 있는 거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고. 난 몰라, 네가 알아서 해.”

 그 말만을 남기고 뭔가를 만들기 시작한 애슐리를 보며 에인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아, 아직 유서 다 안 썼는데.


*


 “저, 저기……, 주, 주문하신 거……, 나왔습니다…….”

 “어? 저녁쯤에나 온다고 들었는데 엄청 일찍 왔네?”

 “이, 일이 새, 생각보다 일찍 끝, 나서……. 저, 절 찾으셨다고……?”

 “아아, 응. 잠깐 시간 괜찮지? 서있는 것도 그러니까 앉아서 얘기할까?”

 “그, 그럼 시, 실례하겠습니다…….”

 용케 음식을 떨어뜨리지 않고 식탁에 내려놓은 에인은 헨리의 눈치를 보며 맞은편에 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 이제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잠시 후에 잡혀 간다든가? 아님 그냥 바로 여기서 죽는 건가? 근데 얘기하쟤놓고 아무 말도 안 하는 건 또 뭐야. 긴장감을 조금이라도 이기기 위해 옷자락을 두 손으로 꼭 잡은 에인은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먼저 말을 걸었다.

 “저, 저기……, 바쁘실 텐데 여긴 어쩐 일로……?”

 “응? 딱히 안 바빠. 누구 말마따나 무능한 황제라서 할 일이 얼마 없거든!”

 “죄송합니다, 죽여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죽여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죽여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와 죽여 달라는 말을 연발하며 식탁에 머리를 박은 에인을 보며 헨리는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에인이 딱히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었고, 그녀뿐만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쯤은 헨리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외에도 또 뭐가 있더라, 권력에 눈이 멀어 가족까지 버린 비열한 황제라든가, 귀족들의 인형에 불과한 형편없는 황제라는 말도 있었는데. 얼핏 들으면 기분이 나빠지는 말이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그렇게 생각해주는 게 나았다. 그래야 다들 방심하니까. 아, 지금은 이런 생각할 때가 아니지. 한참을 계속 머리를 박은 채로 사과하던 에인이 겨우 진정한 듯 고개를 들자 헨리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뭐, 딱히 틀린 말한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사과할 필요까진 없는데-”

 “그, 그래도, 무, 무례를…….”

 “괜찮아, 괜찮아. 근데 살려달라는 말은 딱히 안 하네? 혹시 정말 죽여달라는 걸까?”

 “그, 그건 아닌데…….”

 “살려달라고 하면 진짜 살려줄 수도 있는데. 자, 따라해봐. 살-려-주-세-요-”

 “……살려 주십시오.”

 “음,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살려달라고 했으니 살려주기로 할까.”

 “……감사합니다.”

 또 다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괜히 이마를 문지른 에인은 헨리의 시선을 살짝 피하며 다시 말을 걸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여기에……?”

 “아, 그렇지그렇지. 저번에 못한 말을 하려고 온 거였는데 잊고 있었네.”

 “저번에 못한 말……?”

 “뭐라고 해야 할까, 나를 너무 그렇게 보지 말아달라고 하면 되려나? 이래봬도 나름 열심히 노력 중이라고? 나라를 위해서 말이지.”

 “고작 그런 말을 하려고 여기 오신 겁니까……?”

 “다른 사람이면 모르겠지만 왠지 아가씨한테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달까? 아, 오늘은 이만 실례. 너무 늦게 들어가면 또 한소리 들을 테니까- 남은 건 아가씨 먹어!”

 말을 마친 헨리는 파이 접시를 에인 쪽으로 밀어주고 일어났다. 그리고 에인이 미처 배웅도 하기 전에 휭하고 가게에서 나가버렸다. 홀로 남겨진 에인은 남은 파이를 한 입 베어물고 자리를 정리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정말 이상한 사람…….

 ……그렇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는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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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밝은 글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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