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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ida Stella

[프리로렌]die letzte Hoffnung 본문

1차/단편

[프리로렌]die letzte Hoffnung

시나모리 2019. 8. 17. 00:39

‘한 번이라도 「나」를 친구라고 생각한 적 있어?’

‘네게 있어 「나」는, 그저 부담스러운 사람일 뿐이었잖아.’

‘조금이라도 더 상냥하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웠어?’

‘먼저 다가와줄 수는 없었던 거야?’

‘───너를 저주해. 너를 원망해! 너 같은 건 그냥 절망해버려!’

절규와 같은 외침이 멎음과 동시에 로렌츠는 저도 모르게 눈을 떴다. 주위에 흐드러지게 핀 하얀 꽃들이 바람에 천천히 일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하얀 꽃의 무리는 마치 이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그 가운데 홀로 우두커니 서있는 자신이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막 들려고 할 때쯤, 어디선가 날아온 날카로운 일격이 허리춤에 꽂히는 게 느껴졌다.

“윽…….”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죽상짓고 있으래?”

“당, 신은……!?”

갑작스런 공격에 그대로 엎어진 로렌츠는 앞쪽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허리에서 느껴지는 얼얼함도 잊어버리고 고개를 들었다. 마치 이 하얀 꽃밭을 이미지한 것처럼 새하얀 옷을 입은 그 목소리의 주인은 로렌츠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일으켜주려는 것처럼 손을 내밀고 있던 그는 로렌츠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 당혹감을 읽기라도 한 건지 한 번 웃고선 말을 이었다.

“왜 그런 표정이야, 못 볼 사람이라도 봤어?”

“하지만 당신은…….”

“응응, 알아. 그런데 도저히 널 혼자 둘 수 있어야 말이지. 내 상냥함에 좀 더 감동해도 좋다고?”

그렇게 말하며 씩 웃은 프리드리히는 로렌츠의 한쪽 손을 붙잡고 힘차게 그를 일으켰다. 어쩐지 서늘한 감촉이 낯설게 느껴졌다. 아니,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이 로렌츠에게는 낯설게 느껴지기만 했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감도 잡히지 않아 입조차 열 수 없었다. 자신을 쳐다보는 로렌츠의 시선을 의식하기라도 한 것처럼 잠시 아무 말도 없이 로렌츠를 쳐다보던 프리드리히는 갑자기 표정을 팍 구기더니 로렌츠에게 삿대질을 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너 말야,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뭐, 뭐를요……?”

“아니, 왜 이제 와서 걔가 하는 말에 흔들리는 건데? 솔직히 걔가 하는 말 예전에 내가 몇 번이나 한 말 아냐? 그때는 눈 하나 꿈쩍 안 했으면서 왜 이제 와서 그래?”

어디 한 번 보자. 좀만 더 상냥하게 대해주면 어디 덧나냐고 그랬던가? 또 뭐 있었지? 아예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아가며 프리드리히는 세이렌이 했던 말을 반복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 행위를 반복하던 프리드리히는 세이렌이 했던 말을 얼추 다 헤아렸는지 다시 로렌츠 쪽에게 시선을 돌렸다.

“미, 미안해요. 그, 그러니까…….”

“응? 왜 사과해?”

“그, 그야…….”

“애초에 그게 사과할 일인가? 난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로렌츠가 대체 왜 사과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원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그 웃음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을 용서받은 기분이 들었다. 저도 모르게 흘러내린 눈물을 로렌츠가 깨달았을 때는 프리드리히의 서늘한 손길이 그의 눈물을 닦아줄 때였다. 어쩐지 서글픈 표정을 지은 프리드리히는 조곤조곤 속삭였다.

“……정말,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다니까. 나 없으면 대체 어쩌려고 그런담.”

프리드리히의 말에 로렌츠는 그저 씁쓸하게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프리드리히의 손길이 거둬진 이후, 로렌츠는 그동안 마음 속에 있던 말을 꺼냈다.

“당신은, 나 같은 것보다는 훨씬 강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어쩌다가…….”

“……그럴 만한 일이 있었어. 어쩌다보니 네 믿음을 배신해버렸네.”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프리드리히는 말을 얼버무렸다. 로렌츠에게서 등을 돌리곤 끝이 보이지 않는 하얀 꽃밭의 지평선을 응시하던 그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로렌츠를 돌아보았다. 아련한 미소를 띤 프리드리히는 조용히 말을 늘어놓았다.

“네 믿음대로 나는 강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이젠 아냐. 지금은 나보다 네가 훨씬 더 강한 사람이야. 그건 네 존재 자체가 증명해주고 있어. 그러니 네 자신을 조금 더 믿어줘.”

“프리드리히…….”

“정말, 프리츠라고 불러달라니까! 너무해!”

어쩐지 무거운 분위기를 무마하려고 하는 것처럼 프리드리히는 괜히 과장된 몸짓으로 자신이 토라졌음을 표현해보였다. 자신에게 날아와 꽂히는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로렌츠는 그저 무안하게 웃었다. 이미 익숙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노려보는 것 외에는 별 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던 프리드리히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비비 꼬며 볼멘소리로 뭐 더 할 말은 없냐 물었다. 제법 긴 시간 동안 입을 열지 않던 로렌츠는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말했다.

“……고마워요. 저 같은 사람한테 이렇게까지 해줘서. 프리드리히……, 아, 아니, 프, 프리츠.”

로렌츠 입에서 흘러나온 마지막 단어에 프리드리히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환하게 웃었다. 본인 스스로 말하고도 부끄러웠는지 로렌츠는 차마 프리드리히와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아예 고개를 돌려버렸다. 한참의 침묵이 오고 간 후, 겨우 고개를 든 로렌츠가 다시 프리드리히를 바라보자 여전히 미소 띤 얼굴을 하고 있던 프리드리히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가만히 말했다.

“자, 그럼 헤어질 생각이야.”

손을 흔드며 작별 인사를 하는 프리드리히를 바라보던 로렌츠는 저도 모르게 그를 꼭 껴안고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정말, 정말 미안했어요……. 고마워요……. 이내 저도 같이 로렌츠를 안아준 프리드리히는 마치 그를 달래기라도 하는 것처럼 천천히 그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잊지 마, 넌 내 마지막 희망이란걸.

그 말에 로렌츠가 놀라서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이미 그가 있었던 자리에는 은은하게 빛나는 빛망울 몇 개만이 남아 있었다.

“제가, 당신의 마지막 희망…….”

그 중얼거림과 함께, 하얀 꽃밭 역시 점점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


……내 이름은, 프리드리히 아델하이트 밀러. 누구보다 너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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