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ida Stella
[마코이즈ts]꿈 속의 바람 본문
* http://sinamoris.tistory.com/79 의 외전격
양젖을 다 짠 이즈미는 이마를 간질이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주위를 한 번 돌아보았다. 바람에서 나는 싱그러운 풀냄새에선 일말의 위협이라곤 찾을 수 없었다. 어느새 긴장의 끈을 곤두세우고 있던 이즈미는 어색한 듯 웃으며 양젖이 찰랑거리는 항아리를 들어올렸다. 굳이 주위를 경계하지 않아도, 지금 하는 일 한 가지에만 몰두해도 별 일이 생기지 않는 이런 생활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지금 바람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그런 맥락의 일종이었다. 조금만 경계를 늦추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어딘가에서 혈향이 날 것만 같았다. 잠시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던 이즈미는 혈향과 비슷한 냄새는 일절 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서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직업병인 듯했다. 일 그만둔 지 꽤 됐는데. 시간이 좀 더 흐르면 그래도 좀 덜하려나. 그렇게 생각하며 이즈미는 발걸음을 옮겼다.
“유우 군, 나 왔어-”
“아, 이즈미 씨! ……정말, 무거운 거 들지 말래두.”
“이정도는 거뜬하니까-? 그런 말 안 해도 무리는 안 하고 있으니까?”
“그래도요……. 이즈미 씨 이제 홑몸도 아니잖아.”
항아리를 거의 빼앗듯 받아간 마코토가 약간 불만이 섞인 어조로 중얼거리자 이즈미는 작게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대답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안 드는지 마코토는 뾰로통한 얼굴로 이즈미를 들어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답 안 해줄 거예요? 무리하지 말라니까.”
“무리 안 하고 있다고 했잖아-? 이러다 정말 침대 위에서 손끝 하나도 까딱하지 말라고 하겠어.”
“그럴래요? 뭐 필요한 거 있음 말만 해요. 다 해줄 테니까.”
이즈미를 조심스럽게 침대 위에 내려준 마코토는 그렇게 말하며 이즈미의 손에 가볍게 입맞췄다. 마코토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이즈미는 이내 생긋 웃으면서 답했다.
“음……, 좀 솔깃하긴 하지만 역시 아무것도 안 하면 좀이 쑤실 것 같으니까 거절할래.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힘 쓰는 일은 유우 군보다 내가 더 자신 있고?”
“정말, 어쩔 수 없다니까……. 그래도 말만 하면 다 해준다는 건 정말이니까 필요하다 싶음 바로 불러요, 알겠죠?”
“그럼……, 꼭 안아줄래? 지금 바로.”
이즈미가 웃으며 팔을 벌리자 마코토는 같이 웃어주며 이즈미를 꼭 껴안았다.
……그런 꿈을 꿀 때도 있었다. 현실에서 이뤄지지 않을, 그런 꿈을.
* * *
마코토는 곤히 자고 있는 이즈미를 내려다보며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의 이즈미는 이렇게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는 일이 잦았다. 피를 토하는 게 눈에 띄게 줄어든 것만이 나름의 위안이었다. 자신이 오기 전에 대체 어떻게 생활했는지가 궁금할 정도로 약해진 모습에 마코토는 저려오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괴로운 듯 작게 신음소리를 흘리는 이즈미의 이마를 쓸어주며 마코토는 이즈미의 귓가에 더 자라고 속삭여주었다. 신음소리가 어느 정도 잦아들고 나서야 손을 뗀 마코토는 안경을 고쳐쓰고 아까까지 보고 있었던 양피지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너무 오래 자는 것도 좋지는 않다고 했으니까 다음엔 배합을 좀 바꾸는 게 좋을까. 그치만 지금까지 만든 것 중에 가장 효과가 좋았던 조합인데……. 고통을 덜어주는 것조차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자신에게 무력감을 느끼며 마코토는 얼굴을 막 문질렀다.
“……유우 군, 물 좀 가져와줄래...?”
“앗, 네. 물론이죠. 금방 가져올게요.”
어느새 잠에서 깼는지 갈라진 목소리로 말하는 이즈미에게 물을 가져다준 마코토는 조심스레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그 시선을 눈치챘는지 이즈미는 작게 괜찮다고 말해줬지만, 그래도 계속 신경이 쓰이는지 마코토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질문을 삼켰다. 벌써 서너 번은 넘게 물어본 말이었고, 약을 딱히 바꾼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질문해도 의미는 거의 없을 테지만,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마코토의 생각을 읽은 건지 아닌지 물을 다 마신 이즈미는 말을 이었다.
“……저번에도 말한 것 같지만, 이거면 충분해. 피 안 토하는 게 어디야.”
저번 같은 일 일어날 걱정도 없고. 아직도 마코토의 가슴팍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던 일이 신경이 쓰이는지 말을 마친 이즈미는 다시 몸을 뉘였다. ‘괜찮다면 됐지만…….’라며 이즈미를 도닥여주던 마코토는 이즈미가 다시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손길을 거뒀다.
연금술사의 숙원 중 하나는 생명 연장이었다. 여태까지 잘 와닿지 않았던 그것을, 지금의 마코토는 절실하게 바라고 있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절박했고,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것이 더욱 절망적으로 느껴졌다. 가야 하는 길은 아직도 앞에 한없이 뻗어져 있었지만, 그것에 비해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도 적었다. 조급하게 굴어봐야 좋을 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알아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떠나버릴 것만 같았다. 어찌 보면 가야 할 사람을 억지로 붙들어 놓는 것일 수도 있었으나, 이대로 보내기에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적어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만이라도, 그 짧은 시간만이라도 마코토는 간절히 원했다.
머리를 너무 쓴 탓인지 어지럼증을 느낀 마코토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잠든 이즈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이번엔 그래도 좋은 꿈을 꾸고 있는 건지 편안해보이는 얼굴이었다.
이 얼굴을 꿈속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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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후는 바람이 불던 날의 마지막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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