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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ida Stella

[마코이즈ts]바람이 불던 날 본문

2차/단편

[마코이즈ts]바람이 불던 날

시나모리 2018. 2. 1. 02:17

※판타지au 마코이즈ts

 유혈 및 사망 소재 포함




 “……나, 유우 군의 아이가 갖고 싶었어.”

 세나 이즈미는 마치 굳이 몰라도 상관없는 무언가를 말하는 것처럼 덤덤하게, 하지만 어쩐지 쓸쓸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 * *


 점점 어두워지는 숲속으로 이즈미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계속 들어갔다. 한눈에 봐도 이 어둠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자신을 덮쳐오는 무언가를 검으로 베어내며 이즈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누구 한 명 정도는 더 데려올 걸 그랬어. 예상보다 더 심각하잖아? 검에 묻은 검은 덩어리를 아무렇게나 털어낸 이즈미는 어둠 속으로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어머, 설마 혼자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얼른 모습이나 드러내지 그래?”

 목소리와 함께 날아든 그림자의 공격을 이즈미는 아무렇지도 않게 쳐내며 톡 쏘아붙였다. 그 말에 목소리의 주인은 재밌다는 듯 깔깔 소리를 내며 웃으며 어둠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기분이 나쁜 듯 그가 걸어오는 쪽을 노려보고 있던 이즈미는 그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자 경악해 순간 검을 놓칠 뻔했다.

 “유, 유우 군……? 어째서 네가……?”

 “어라, 둘이 아는 사이? 그런데 어쩌지, 이 아이는 이제 내 건데.”

 그렇게 말하며 「마코토」는 눈을 붉게 빛내며 요염하게 웃었다. 그는 이즈미가 놀라 자세를 흐트러뜨린 그때를 놓치지 않고 손에서 검은 무언가를 쏴 그녀를 공격했다. 갑작스런 공격에 이즈미가 그대로 나동그러지자 그는 기분 좋은 듯 소리내어 웃었다.

 “너 당장 유우 군 몸에서 안 나와……!?”

 “내가 왜? 이렇게 좋은 몸은 정말 오랜만인데.”

 ‘거기다 원래 몸 주인은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했던 것 같고. 그럴 바엔 역시 내가 쓰는 게 훨씬 낫지 않겠어?’라며 묻지도 않은 말을 마구 늘어놓는 마코토에게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즈미는 ‘조용히 안 해!?’라고 소리쳤다.

 “조용히 안 하면 어쩔 건데? 네가 할 수 있는 거라도 있어?”

 넌 날 죽일 수 없어. 지금 네가 날 베면 이 몸도 같이 죽을 테니까 말이야. 조곤조곤 속삭이며 마코토는 검은 촉수들로 이즈미를 공중에 매달았다. 점점 몸을 죄어오는 촉수에 이즈미는 견디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으나, 그 반응을 즐기는 듯 마코토는 촉수를 느슨하게 풀었다 세게 조이는 것을 반복했다.

 “그, 그만……! 유우 군, 제발……. 정신, 차려…….”

 “소용없……, 크흑!?”

 “유우 군!?”

 “이, 즈미, 씨……? 나 왜 여기, 에……. 잠깐, 완전히 주도권을, 나 지금, 무슨 말을, 빼앗은 게 아니었어? 어떻게, 이런? 하는……?”

 마코토가 잠시 제정신을 차린 탓인지 순간 완전히 힘을 잃은 촉수들을 가까스로 베어낸 이즈미는 마구 떨리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마코토에게 다가갔다. 마코토도, 몸을 빼앗았던 이도 당황한 건지 두 사람의 말이 마구 섞여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즈미는 본능적으로 마코토가 잠시나마 제정신을 차린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다. 절대로 실수하면 안돼. 베어야 할 곳은 유우 군의 목 바로 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유우 군이……. 아니, 그것뿐만이 아니라……. 마음을 가다듬은 이즈미는 두 손으로 검 손잡이를 꽉 잡았다. 하나, 둘, 셋. 바로 지금! 마지막 힘, 마지막 정신력까지 쥐어짜 검으로 허공을 가른 이즈미는 검에 느껴지는 미묘한 떨림에 작게 웃었다. 좋아, 성공했어! 안도하던 이즈미는 실이 끊긴 인형마냥 아무렇게나 풀밭에 쓰러진 마코토를 보고 급하게 그에게 다가갔다.

 “유우 군, 유우 군? 괜찮아?”

 “…….”

 숨은 쉬고 있고……, 아까까지 느껴지던 기분 나쁜 기운도 이젠 안 느껴지고……. 그냥 지쳐서 쓰러진 건가? 일단 급한 대로 마코토의 입에 포션을 흘려넣은 이즈미는 그럼에도 눈을 뜨지 않는 마코토에 이상한 것을 깨닫고 입술을 꼭 깨물었다. 아냐, 그럴 리가 없어. 후들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킨 이즈미는 마코토를 짊어지고 입술을 꼭 깨물었다. 절대로 그냥 보내지 않아, 절대로.


*


 “……하스미!”

 “무슨 일이지, 세나? 아무리 급해도 큰 소리는 내지 말라고 말한 것 같다만.”

 “지금 그게 중요해!?”

 어떻게 탑까지 마코토를 데려온 이즈미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처음엔 이즈미의 무례함에 설교를 늘어놓으려던 케이토도 이즈미의 모습과 그녀가 업고 온 마코토를 보고 사태의 심각함을 깨달았는지 딱히 무어라 하지 않고 두 사람을 안쪽에 눕혀주었다. 일단 이거라도 마시라며 케이토가 내민 차를 한 모금 마신 이즈미는 이제서야 긴장이 풀린 듯 한숨을 폭 내쉬었다. 차를 다 마신 후에도 그동안의 피로가 한 번에 닥친 듯 이즈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유우 군이 이상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일어나지 않아.”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있는 거다.”

 케이토의 질문에 손톱을 잘근잘근 씹고 있던 이즈미는 작게 끙 소리를 내고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아직 피로가 남아 있는 탓인지 설명은 꽤나 장황한데다 중간중간 관련 없는 내용도 섞여 있었으나 케이토는 이즈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꽤나 질 나쁜 놈한테 걸렸나 보군. 일단 1차 책임은 나한테 있는 셈이지만…….”

 “됐고. 이미 지나간 일이잖아. 유우 군이 괜찮은지나 말해.”

 케이토의 말이 길어질 것을 직감한 이즈미가 그의 말을 자르고 방법을 촉구하자, 케이토는 잠시 불쾌한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 고개를 젓고서 마코토의 상태를 살폈다. 시간이 지날수록 표정이 점점 굳어가는 케이토를 본 이즈미가 ‘왜 그러는데? 큰일이라도 났어?’라고 묻자 케이토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되물었다.

 “너와 싸우는 도중에 유우키의 정신이 돌아왔다고?”

 “그렇다니까. 내가 거짓말이라도 하겠어?”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럴 리가 없다니, 무슨 말인데?”

 “지금 상태로 미루어 보면, 그때쯤 유우키의 몸의 주도권은 그놈이 완전히 장악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이렇게 숨이 붙어 있는 거 자체가 기적이나 다름없다.”

 “……뭐야. 그럼 이대로 죽어가는 걸 지켜보고만 있으라고!?”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너 현자잖아. 지금 나랑 장난해!?’라며 자신의 멱살을 붙잡아 올린 이즈미를 일단 사람 말을 끝까지 들으라며 케이토는 이즈미를 진정시켰다. 화가 제대로 났는지 한참을 씩씩거리던 이즈미는 멱살을 놓은 후에도 아무 말 없이 케이토를 노려보다가 이래봤자 나아질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서 그럼 얼른 나머지도 말하라며 신경질적으로 그의 말을 재촉했다.

 “일단 이해하기 쉽게 얘기하자면 유우키한테 들러붙은 놈은 인간의 영혼을 갉아먹는 식으로 인간의 몸을 빼앗는다. 영혼이 반 정도 갉아먹혔으면 대개 몸의 주도권은 그놈이 쥐게 되지. 반절밖에 없는 영혼으로는 아무래도 무리니까.”

 “……그래서? 지금 유우 군의 영혼이 반 정도밖에 안 남았다는 소리?”

 이즈미의 질문에 케이토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큰 충격을 받은 듯 이즈미는 순간 몸을 휘청였다. 그런 이즈미를 부축해주며 케이토는 사람 말은 끝까지 들으라며 혀를 차고는 말을 이었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지금 유우키는 아직 살아있으니 영혼을 복구시키면 다시 깨어날 수 있겠지. 물론 기억이 좀 사라진다거나 그런 부작용은 있겠지만.”

 “……방법이 있는데 바로 할 수 없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지?”

 “그렇지. 일단 들어가는 재료만 해도 여간 희귀한 게 아니고, 가장 중요한 건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지만 아까 말했다시피 이 일에는 내 책임도 있으니 여차하면 에이치한테라도 부탁해서…….”

 “그게 뭔데?”

 이즈미의 말에 케이토는 입을 꾹 다물고 대답을 회피하려 했으나 이즈미의 연달은 질문에 견디지 못한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안경을 고쳐쓴 그는 이즈미를 바라보며 물었다.

 “세나, 영혼을 대신할 만한 게 뭐라고 생각하나?”

 “그야 생……, 설마?”

 “그래. 인간의 수명이 필요하다. 나머지는 그 둘을 이어붙이기 위함에 지나지 않아. 유우키의 영혼은 절반 정도가 사라졌으니 수명도 절반은 필요하지. 어느 누가 수명의 절반을 선뜻 내놓을 거라 생각하나?”

 “…….”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수도 없으니 급한 대로…….”

 “내 걸 써.”

 서둘러 나갈 채비를 하는 케이토의 옷자락을 붙잡고 이즈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 케이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즈미를 바라보자 이즈미는 또렷하게  ‘내 수명을 쓰라고 말했어.’라고 말했다. 충격에 사고회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지 케이토는 이즈미를 바라보다가 무슨 뜻인지 깨닫고 버럭 화를 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수명이 반이나 줄어버리는 거라고! 거기다 세나, 너는 황실 직속 기사단의……!”

 “급하다며! 찾으러 가는 동안 유우 군이 죽어버리면 어떡할 건데!? 죽으면 방법도 없잖아!”

 거기다 넌 계속 네 책임도 있어서 그러는 거라고 하지만 사실은 너도 유우 군이 죽으면 곤란하니까 그러는 거잖아! 다른 사람을 제자로 들이는 것보다 부작용이 있어도 유우 군을 깨우는 게 이득이니까! 유우 군을 대신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이즈미는 케이토의 옷자락을 더 꽉 잡으며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차마 부정할 수 없는 듯 케이토가 아무런 대꾸 없이 그저 시선만 피하고 있자 이즈미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기사단에는 나 말고도 네 명 더 있지만 유우 군은 대신할 사람도 없어. 수명의 반이라며? 그럼 지금 당장 죽는 것도 아니잖아.”

 “아니, 죽을 수도 있다. 만약 네가 이미 수명의 반 넘게 살았다면…….”

 “됐고! 수명 말고 또 필요한 거 있어?”

 “……아니, 없다. 다른 재료는 다 여기에 있으니.”

 “잘 됐네. 그럼 얼른 시작해. 난 뭐하면 되는데?”

 “잠시만 기다려라. 금방 약을 만들어줄 테니, 마시고 최대한 아무 생각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자도 상관없다.”

 케이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즈미는 그가 약을 만드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과정임을 깨닫고 이내 시선을 돌리고 마치 죽은 듯이 정신을 잃은 마코토를 바라봤다. 아마 가슴이 미약하게나마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 정말 죽었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코토를 이 세상에 붙잡아 놓으려는 듯 마코토의 손을 꽉 잡은 이즈미는 케이토가 몇 번이나 자신을 부르고 나서야 손에 주고 있던 힘을 풀었다.

 “맛은 좀 없겠지만,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다 마셔야 한다. 토할 것 같아도 억지로 삼켜. 안 그러면 말짱 꽝이니까.”

 “그정도는 나도 알아.”

 속으로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있나? 라고 생각하며 약을 들이킨 이즈미는 훅 올라오는 역한 느낌에 필사적으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아, 이래서…….’라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빠르게 몰려드는 피곤함에 이즈미는 저도 모르게 뒤로 풀썩 쓰러져 눈을 감았다. 귓가에 희미하게 ‘그래, 차라리 자라.’라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


 얼마나 잠들었을까, 이즈미는 머리에 통증을 느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분명 자고 일어났을 터인데 어쩐지 잠들기 전보다 몸이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두통 탓인지 잠시 멍하게 앉아 있던 이즈미는 자신이 잠들기 전의 상황을 떠올리고서는 급하게 케이토에게 물었다.

 “유우 군은 무사해? 뭔가 잘못된 건 없어?”

 “뭔가 잘못된 것도 없고, 유우키도 좀 있으면 깨어날 거다. 너야말로 괜찮나?”

 “……아니.”

 고개를 돌려 마코토의 숨이 아까보다 훨씬 편해진 것을 확인한 이후에야 자신의 몸상태를 인지했는지 이즈미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머리도 어지럽고, 기운도 좀, 없고……. 속도 안 좋은 것 같고……. 말을 마치자마자 갑자기 구토감이 밀려온 듯 이즈미는 손으로 입을 꽉 틀어막았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케이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느낌으로 말했다.

 “……갑자기 수명이 팍 깎였으니 멀쩡한 게 더 이상할 거다. 지금 네가 살아 있는 걸로 보아하니 아마 일시적인 증상이겠지. 한동안은 푹 쉬도록.”

 그렇게 말하며 케이토는 회복에 도움이 될 거라며 이즈미에게 물약 몇 개를 쟁여주었다. 군말없이 그것들을 받아든 이즈미는 그 중 하나를 마시고 잠시 앉아있더니 어느 정도 기력이 회복됐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갈게. 유우 군은 무사한 거 맞지?”

 “벌써 가려고? 좀 더 쉬었다 가는 게 좋을 텐데. 일단 유우키를 구한 것도 너고, 그리고…….”

 “됐어. 여기서 쉬는 것보단 집에서 쉬는 게 나아. 딱히 감사 인사 들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아, 그리고 유우 군한테 내 얘긴 딱히 하지 마. 굳이 해야 된다면 그냥 구해준 것까지만 얘기해. 그 이상 얘기는 하지 말고.”

 “……알았다.”

 이즈미가 무슨 뜻으로 말했는지 이해한 케이토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통해서 좋네, 라며 이즈미는 작게 웃고서는 옷을 추스리며 탑을 나섰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쓴 듯 하나 역시 아직 완벽히 회복되지는 않은 듯 비틀거리는 뒷모습을 본 케이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시적인 증상이라면 좋으, 련만.


*


 “끄응…….”

 “일어났나, 유우키.”

 “하, 하스미 씨……!? 저 분명 재료를 구하러……. 아니, 이게 아니라 죄송해요! 시킨 일도 제대로 못하고…….”

 “……됐다. 무사히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해.”

 이런 상황에서까지 그런 거나 걱정하고 있다니……. 케이토는 마코토에게 들키지 않게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다는 말을 들어도 역시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것에 자책하는 건지 침울해 있는 마코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선 케이토는 마코토에게 상태를 물었다.

 “몸은 괜찮나? 어디 불편한 데는 없고?”

 “손끝에 감각이 좀 없는 것 빼고는 괜찮은 것 같아요. 아, 그치만 수련하는 덴 별 문제 없을 테니까……!”

 “정말 괜찮대도. 그렇게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무사히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을 텐데.”

 케이토의 말에 그제서야 한시름 덜었는지 마코토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긴장을 푼 모습을 보니 손끝 말고도 편치 않은 부분이 많은 듯 싶었지만 그래도 이정도로 끝난 게 어딘가 싶었다. 아마도 빠른 조치 덕택이겠지. 나중에 세나한테 더 감사 인사를 해야겠는걸……. 그렇게 생각하며 케이토는 몸이 불편한지 눈을 찌푸리고 있는 마코토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유우키, 쓰러지기 전의 기억은 있나?”

 “음……, 잘 모르겠어요. 갑자기 누가 말을 건 이후론, 기억이……. 그리고 눈 떠보니까 여기였고…….”

 “……그렇군. 나중에 세나한테 감사 인사라도 하도록. 쓰러진 널 발견해서 여기까지 데려다줬으니까.”

 “에, 이즈미 씨가요……?”

 케이토의 말에 마코토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되묻자 케이토는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 나중에 만나게 되면 꼭 할게요……. 잠시 아무 말도 않던 마코토는 케이토의 눈치를 살피다가 어물쩍하게 대답했다. 마코토의 반응에 케이토는 새삼 이즈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깨달았는지 마코토에게 보이지 않게 쓰게 웃었다.


* * *


 입을 막은 손에 질척하게 묻은 검붉은 피를 닦아내며 이즈미는 쓰게 웃었다. 피를 보는 것은 익숙했다. 피를 흘리는 것도 익숙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피를 토하는 것엔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다. 일시적인 증상?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일시적인 증상은 아닌가보네. 아니, 어떻게 보면 일시적인 증상이란 말 자체는 틀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얼마 안 가 다 끝날 테니까. 이렇게 피를 토하는 것도, 조금만 서있어도 비틀거리는 것도, 숨 쉬는 것도, 전부.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애초에 기사단에 들어갔을 때부터 각오했던 일이었고, 실제로도 죽을 뻔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당장 언제 죽을지 몰랐고, 그것이 내일일 수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명의 반을 주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의 수명이 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 자리에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눈을 떴을 때엔 의외였다. 나, 내 생각보다 명이 질긴가 보네. 뭐, 그래서 나쁠 건 없지. 그때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즈미가 기사단에 복귀하고 사흘 정도 흐른 후의 일이었다. 딱히 마물이 강력하다기보다는 그 수가 많았기 때문에 2인 1조였던가, 3인 1조였던가로 마물 사냥에 나섰던 것 같았다. 검을 몇 번이나 휘둘렀을까, 아니, 휘두르기도 전이었을까. 이즈미가 딱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져버린 것은. 아마 혼자였다면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였던 것은 불행이었을까, 다행이었을까.


*


 “이즈미쨩……! 괜찮아!?”

 “……나루 군?”

 “갑자기 쓰러져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거기다 피까지 토하고!”

 이즈미가 깨어난 걸 보고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는지 아라시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지금 자신이 기사단에서 눈을 뜬 것을 보면 그래도 괜히 황실 직속 기사단 소속이 아닌지, 전력이 하나 줄었음에도 별 탈 없이 임무를 성공한 것 같았다. 아라시를 달래주듯 어깨를 토닥여주던 이즈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사람 걱정을 이렇게 시키냐고 따지는 듯이 말하는 아라시에게 덤덤하게 대답했다.

 “앞으론 이런 걱정 안 시킬 거야. 관둘 거니까.”

 “뭐……!? 역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냥 상태가 나빠진 것뿐이야. 오늘도 그렇고, 아무래도 이 몸상태로는 싸우기는 힘들 것 같고 너희한테 짐만 될 뿐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너무 갑작스럽지 않습니까……!”

 “나루 군 말 못 들었어, 카사 군? 예전부터 그만둘 생각은 하고 있었어. 말하는 게 예상보다 빨라진 것뿐이야.”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그만둘 생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즈미의 생각보다 그만둬야 할 때가 빨리 찾아온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몇 년 정도는 더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보기 좋게 자신의 예상을 벗어난 것에 이즈미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쓰러진 그때 죽었으면 좋았을걸. 그렇다면 이렇게 서서히 목을 조여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지도 못했을 텐데. 그런 생각도 잠시, 언제 웃었냐는 듯이 평소의 새침한 표정으로 돌아온 이즈미가 얼른 답을 달라는 듯 레오를 바라보자 레오는 진지한 건지 장난스러운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답했다.

 “관두는 건 안돼, 세나. 대신 휴가를 줄 테니까 다 나으면 돌아와. 오래 쉬어도 상관없으니까 다 낫고 돌아와.”

 “뭐? 아니, 관둔다니까? 관두지 말라고 해도 관둘 거니까?”

 “「명령」이야, 세나. 얼마를 쉬어도 상관없으니까 다 나으면 돌아와. 설마 명령을 어길 셈은 아니겠지?”

 “……알았어.”

 마치 자신을 꿰뚫어보는 듯한 레오의 눈빛에 이즈미는 더 이상의 반박을 하는 것을 포기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이는 이 자리에 아무도 없을 텐데, 어쩐지 모든 것을 들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면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말을 한 걸지도 모른다.

 자신이 돌아올 수 없다는 것마저도.


* * *


 유우키 마코토는 그날 이후로 세나 이즈미를 만난 적이 없었다. 그 사실을 마코토가 눈치챘을 때는 이미 제법 시간이 흐른 이후─영영 감각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팔의 감각이 기적적으로 돌아온 것보다 더 오래─였다. 그제서야 마코토는 이상함을 느꼈다. 그동안 이렇게 오랫동안 이즈미와 만난 지 못한 적은 없었다. 이즈미는 자신이 아무리 그녀를 피하려 애를 써도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 같이 자신 앞에 나타나던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코토는 깨어난 이후에도 굳이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이즈미를 찾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찾아가지 않아도 알아서 이즈미가 찾아올 테니까. 다음에 이즈미 씨를 보면 그땐 바로 피하지 말고 감사 인사를 하자, 그리고 어느 정도 싫은 소리를 한다 해도 이번엔 들어는 주자. 별 대수롭지 않게 마코토는 그런 계획을 세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한구석으로 밀려났다.

 한 번 의구심이 들자, 그것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불어났다. 처음은 ‘이즈미 씨 많이 바쁜가?’ 정도로 생각하고 가볍게 넘겼으나,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해주기라도 하듯 기사단의 여유로운 모습을 본 마코토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럼 아픈가? 하긴 나도 꽤나 오랫동안 아팠으니까 이즈미 씨도 많이 다쳤던 거 아닐까? 이즈미가 얼마나 자존심이 센지, 그리고 특히 자신 앞에서는 절대 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마코토는 이즈미 씨가 아파서 그런가보다, 라고 생각하며 낫기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석연찮은 부분이 있었다. 이렇게 자신이 다 나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면, 이즈미 역시 다 낫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자신을 구해준 것이 이즈미였으니 이즈미의 부상은 자신보다는 가벼웠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면 정말 큰일이 생긴 게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른 마코토는 초조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역시 이쪽에서 찾아가는 게 나을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렇게 내키지는 않았다. 이즈미는 마코토에게 있어 여러모로 거북한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폭언을 일삼는 것도, 자신에게 집착하는 것도, 그외의 것들도 모두 합쳐서. 그러나 유우키 마코토는 그다지 매정한 사람이 아니었고, 적어도 목숨을 살려준 사람인데 감사 인사도 아직 하지 못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 감사 인사만 하는 거야. 그래도 그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 유우키는 그렇게 자신을 합리화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


 똑똑,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레오는 들어오라고 말했다. 이런 식의 방문은 드물었다. 여기까지 찾아올 수 있는 사람도 극히 드물거니와, 대부분의 명령은 서신으로 통보되거나 단장인 레오를 소환하는 식으로 전달되었다. 노크 소리에서부터 대강 짐작했지만, 쭈뼛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을 본 레오는 어째서 그가 여기에 왔는지 눈치챘지만 짐짓 모르는 척 하며 손님을 맞았다.

 “저, 실례합니다…….”

 “여기까진 무슨 일? 개인적인 의뢰는 안 받는데-”

 “아, 그, 의뢰하려고 온 건, 아니구요……. 이즈미 씨가 어디 있는지, 알고 싶어서…….”

 “세나? 세나는 휴가 갔어.”

 레오의 말에 마코토는 곤란한 듯 시선을 떨궜다. 잠시 침묵하던 마코토가 그럼 대충 어디에 있을지 짐작 가는 데가 있냐고 묻자, 레오는 모른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어쩐지 그의 행동에서 어딘가 작위적인 점을 느낀 마코토가 그래도 짐작이 가는 데 정도는 있을 거 아니냐며 재차 따지자 레오는 눈빛을 싹 바꾸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르쳐주기 싫다고 한다면?”

 “……어째서요?”

 “어째서라고 생각해?”

 “……늦은 건, 알아요.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제발……, 짐작 가는 데라도 알려주세요.”

 꿰뚫어보는 듯한 레오의 눈빛에 마코토는 순간 주춤했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고 레오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대꾸하지 않고 한참을 마코토를 바라보던 레오는 끝까지 시선을 거두지 않는 마코토에 생각을 바꿨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서는 입을 열었다.

 “……세나는 고향에 갔을 거야. 원래는 관둔다는 걸 내가 억지로 휴가로 바꾼 거니까. 이건 나도 정말 짐작일 뿐이니까 거기 없으면 정말 몰라.”

 “…….”

 “있지, 세나를 만나면……. 아니, 됐어. 못 들은 걸로 쳐.”

 레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한 마코토는 감사 인사를 짤막하게 남기고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방을 빠져나왔다. 이즈미와 자신의 고향이 같다는 것이 이번에는 퍽 감사하게 느껴졌다. 근데 거기 잠깐 다녀오려고만 해도 한참은 걸릴 텐데. 어떡하지, 일단 하스미 씨가 허락해주실까? 머리가 복잡해진 마코토는 저도 모르게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 * *


 예상외로 쉽게 허락을 얻어낸 마코토는 손에 든 쪽지의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걸음을 옮겼다. 이게 지금까지 도움이 될 줄은 몰랐는데. 마코토는 쓴웃음을 지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즈미 씨가 아직도 거기서 살고 있을까? 다시 돌아왔다 해도 그 집이 그대로 남아 있을 리도 없고, 역시 몇 번 헤맬 각오는 해야겠지? 정 안 되면……. 그래도 거기까지는 안 가면 좋겠다며 마코토는 머리를 흔들며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버리고는, 어느새 도착한 어느 집의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 유우 군?”

 “아, 이즈미 씨……. 머리, 많이 길었네요…….”

 오랜만에 보는 이즈미의 모습에 마코토는 순간 멍하게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본 탓인지, 이즈미의 모습은 마코토가 기억하고 있던 것과 다소 차이가 있었다. 걸리적거린다며 항상 짧게 유지하던 머리는 어느새 가슴께를 덮고 있었고, 옷 역시 항상 입고 있던 제복이 아닌 종종 오가다 본 여인네들이 자주 입던 하늘거리는 드레스 차림에 추운지 어깨에 걸치고 있는 숄이 눈에 띄었다. 마코토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있자 이즈미는 머리를 한 번 뒤로 넘기고 마코토에게 말을 걸었다.

 “그야 이젠 잘라야 할 일 없으니까. 하고 싶은 말은 그것뿐?”

 “아, 아뇨……! 그, 이미지가 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서. 아니, 이게 아닌데.”

 당황해 아무 말이나 내뱉는 것 같은 마코토를 보며 이즈미는 어이없다는 듯 마코토를 바라보다가 그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쓸데없는 말을 한 것 같은 마코토는 얼굴을 잔뜩 붉힌 채로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그녀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


 “자.”

 “아, 굳이 이런 거 안 주셔도 되는데…….”

 “이거 다 마시면 돌아가라고 할 거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그, 그게…….”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신 마코토는 이즈미의 눈치를 살피다가 결심한 듯 침을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감사, 인사를 하고 싶어서요……. 이즈미 씨가, 아니었으면 저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었을 테니까……. 여, 역시 아무 말도 안 하는 건 마음에 걸려서…….”

 “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 고작 그 말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하스미가 뭐라고 안 하대?”

 “그, 감사 인사 하라고 하신 것도 하스미 씨고……, 허락도 제대로 받고 왔는걸요. 무, 물론 제 생각보다 순순히 허락해주셔서 저도 좀 놀랐지만…….”

 마코토의 말을 들은 이즈미는 속으로 ‘걔도 정말 쓸데없는 짓을 한다니까…….’라고 중얼거리며 얼굴을 한손으로 감싸쥐었다. 그거 말고 또 쓸데없는 소리 한 거 아냐? 가린 손 틈으로 마코토의 상태를 살피던 이즈미는 자신이 우려하는 바까지는 말하지 않은 것 같아 작게 안도하며 손을 내렸다. 무안한 듯 차만 홀짝홀짝 마시던 마코토는 아까 이즈미의 말이 신경쓰이는 듯 한 모금 정도밖에 남지 않은 찻잔을 앞에 두고 이즈미의 시선을 피하며 우물쭈물거렸다. 그 모습에 조용히 마코토의 잔을 채워준 이즈미는 다시 마코토에게 말을 걸었다.

 “하고 싶은 말은 그게 다야?”

 “그, 그건 아니구요……. 그, 이즈미 씨 역시 많이 아픈 거죠……? 하스미 씨도 그렇고, 츠키나가 씨도, 그렇고……. 둘 다 걱정하는 눈치던데…….”

 “……아는 건 거기까지야?”

 “…….”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마코토를 보고선 이즈미는 한숨을 내쉬었다. 중요한 것은 알지 못해도 자신의 상태에서는 어느 정도 눈치를 챈 것 같았다. 그럼 거짓말을 해봤자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인정하고 돌아가라고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다행인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 그것만은 모르길 바랐다.

 “응, 몸 안 좋아서 돌아온 거야. 됐지? 그리고 하스미한테 딱히 감사 인사까지 하러 보낼 필요는 없다고 전해줘. 따지고 보면 내가 구한 사람이 몇 명인데 그 사람들이 다 나한테 감사 인사하러 온 것도 아니잖아? 난 할 일을 한 것뿐이야.”

 “그, 그치만…….”

 “난 더 이상 할 말 없어. 유우 군도 하고 싶은 말 다 한 것 같은데 돌아가. 차 더 마실 거면 더 마셔도 되고.”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술을 깨무는 마코토를 뒤로 하고 이즈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매정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 나쁘지는 않았다. 거기다 간신히 멀쩡한 척 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은 버티는 것도 무리였다. 유우 군 앞에서 쓰러지는 것만은 죽어도 피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즈미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최대한 비틀거리지 않게 노력하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몇 발자국 걸었을까, 더 이상 한계인지 기침이 다시 터져나왔다. 입을 막은 손엔 늘 그랬듯 피가 묻어 있었으나 지금은 닦을 여유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뒷모습이었기에 들썩거리는 어깨만 보였다는 것이었다. 기침 후에 몰려오는 현기증에 피가 묻지 않은 손으로 벽을 짚어 몸을 지탱한 이즈미는 필사적으로 쓰러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마치 한계라고 말하는 것처럼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며 동시에 의식이 점점 멀어져갔다. 기절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었으나 지금은 때가 좋지 않았다. 왜 하필, 지금. 조금만 더 버텨주지. 그런 생각도 잠시, 자신의 몸이 쓰러지면서 ‘쿵’ 소리가 들리는 것마저도 저 멀리서 울리는 것을 느끼며 이즈미는 의식을 놓아버렸다.


*


 착잡함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마코토는 무언가 묵직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소리의 정체를 찾아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던 마코토의 눈에 띄인 것은 땅바닥에 쓰러진 이즈미였다. 그것뿐이라면 좋으련만, 이즈미의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피와 미처 닦지 못한 듯 손바닥에 너절하게 묻은 검붉은 피에 마코토는 순간 뒷걸음질 칠 뻔 했으나 이내 마음을 다잡고 이즈미를 안아들었다. 이즈미를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혀준 마코토는 입과 손에 묻은 피를 닦아주었다. 죽은 듯 잠든 이즈미를 바라보던 마코토는 이렇게 바라보기만 할 순 없다는 것을 깨닫고 비상용으로 가져온 물약을 꺼냈다. 괜찮아, 배운 대로만 하면 돼. 흘리지 않게 이즈미의 입에 물약을 흘려넣은 마코토는 가만히 이즈미의 손을 양손으로 감싸쥐고 주문을 외웠다. 이 정도로 나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완화라도 되면 좋을 텐데. 다행히 마코토의 염원이 통했는지 얼마 안 가 이즈미의 손이 꿈틀거리는 듯 싶더니 천천히 이즈미가 눈을 떴다.

 “이, 이즈미 씨 괜찮아요……?”

 “……유우 군이 한 거야?”

 “그, 급한 치료밖에 안 되지만……, 네…….”

 “대단하네, 유우 군. 이젠 미숙하다는 말도 못하겠어.”

 부드러운 말씨로 말하며 이즈미는 마코토에게 은은하게 웃어보였다. 어째서 그동안 듣고 싶은 말을 들었는데 기쁘지 않는 거지……? 마코토는 심란한 표정 그대로 괜히 잡고 있던 이즈미의 손을 더욱 꼭 붙잡았다. 손에 느껴지는 압박에 이즈미는 그것을 떨쳐내는 대신 살며시 맞잡으며 조용히 말했다.

 “……나, 유우 군의 아이가 갖고 싶었어.”

 언젠가 기사 일을 그만두게 되면, 더 이상 싸워도 되지 않는 평화로운 곳에서, 너와 함께, 우리 둘을 닮은 아이를 낳고, 양젖을 짜든가 베를 짜는 것 같은 안온한 생활을 하고 싶다고, 마음 속에서 어렴풋이 그렇게 바랐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갑자기…….”

 “알아. 그저 내 바람일 뿐이니까. ”

 “아니, 그게 아니라……. 그, 지, 지금이라도 괜찮으면……!”

 “……마음에 없는 소리는 굳이 안 해도 돼. 그리고 유우 군이 진정으로 원한다 해도,”

 너무 늦었어, 유우 군. 나지막하게 덧붙인 그 말에 마코토는 무력함을 느꼈다. 차마 늦지 않았다고 변명하기엔 이즈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 강력하게 가슴을 파고 들었다. 무거운 표정을 한 마코토를 바라보던 이즈미는 손을 살짝 빼내며 말했다.

 “나, 좀만 더 잘게.”

 아픔에 시달리지 않고 잠드는 게 얼마나 오랜만이었더라. 마코토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이즈미는 눈을 감았다.


* * *


 “오늘은 날씨가 좋네요.”

 벤치에 앉은 마코토는 이즈미가 기대기 편하게 자세를 고쳐앉으며 자신의 어깨에 기대서 꾸벅이는 이즈미를 토닥였다. 바람에 날린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마코토는 이즈미에게 속삭였다.

 “피곤하면 더 잘래요?”

 “응…….”

 “응, 잘 자요.”

 나지막하게 자장가를 불러주던 마코토는 어느새 이즈미가 잠든 걸 보고 노래를 멈췄다. 잠시 가만히 있던 마코토는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문득 이즈미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금 들려오는 소리는 숨소리일까, 바람소리일까. 쓰게 웃은 마코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잘 가요, 이즈미 씨.”

 그렇게 말한 마코토는 이즈미의 이마에 살짝 입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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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보고 싶어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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