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ida Stella
절망한 이후의 나는 또 절망했던가. 이제는 그런 것조차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무엇도 바라지 않고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 자체를 포기한다는 게 절망이라면 지금의 나는 역시 절망한 게 맞는 걸까. 아니, 희망과 절망 그 둘 중 어느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이었다. 자신은 그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존재였다. 안에 든 것 따위 하나도 없이, 그저 존재하는 게 전부인 텅 비어버린 무언가. 주어지는 것은 오로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존재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뿐이었다.그렇다면 나는 왜 여기 있는 걸까. 이런 질문도 이제는 아무 의미를 갖지 않았다. 말이라는 형태를 구성하고 있지만 의미를 잃어버린 질문이었다. 껍데기만 남은 자신처럼 저 말 역시 껍데기만 남아 그저 자신과 함께할..
♪I see the moon, and the moon sees me. God bless the moon, and god bless me.♪ 1. 일의 시작은 아무런 예고 없이 일어난 일식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갑작스런 천문현상이겠거니 하며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것이 곧 일어날 재앙의 전조인지도 모르고. 불현듯 하늘이 어두워지는 것과 동시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쓰러져갔다. 쓰러진 채 그대로 움직임이 멈춰버린 사람들, 몸에 보라색 균열이 생기는 듯 싶더니 돌연 괴물로 변모하는 사람들. 별이 지는 것과 함께 각지에서 일어나는 비극. 말 그대로 재앙(disaster)가 따로 없었다. 도망가야 해. 본능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어 하루나는 두 다리를 바삐 움직였으나, 재앙이 덮쳐오는 속도..
‘한 번이라도 「나」를 친구라고 생각한 적 있어?’‘네게 있어 「나」는, 그저 부담스러운 사람일 뿐이었잖아.’‘조금이라도 더 상냥하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웠어?’‘먼저 다가와줄 수는 없었던 거야?’‘───너를 저주해. 너를 원망해! 너 같은 건 그냥 절망해버려!’절규와 같은 외침이 멎음과 동시에 로렌츠는 저도 모르게 눈을 떴다. 주위에 흐드러지게 핀 하얀 꽃들이 바람에 천천히 일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하얀 꽃의 무리는 마치 이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그 가운데 홀로 우두커니 서있는 자신이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막 들려고 할 때쯤, 어디선가 날아온 날카로운 일격이 허리춤에 꽂히는 게 느껴졌다.“윽…….”“그-러-니-까-! 누가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