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차/단편 (45)
Lucida Stella
※TS 주의 아이자크와 나는 소꿉친구다. 부모님의 말씀에 따르면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우리 둘의 부모님은 친한 이웃사촌이었고, 우리 둘도 자연히 어렸을 때부터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 것이다. 그렇게 늘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유치원도,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같이 다녔다. 그런데……. 내 눈이 어딘가 이상해졌는지, 아니면 머리가 이상해졌는지 요즘 들어 이 자식이 멋져 보이기 시작한 거다. 거기다 키도 훌쩍 커져서 뭔가 어른스럽게 보이기도 하고……. 아, 분명 어렸을 때는 내가 더 컸던 것 같은데. 어느 샌가 눈높이가 비슷해지더니, 지금은 나보다 한 10cm는 큰 것 같다. 그리고 확실히 얼굴도, 어렸을 때는 좀 여리여리했던 것 같은데. 이젠 선도 좀 굵어지고. 뭐랄까, 이제 완전 어른스러웠..
“……” “카노, 또 멍 때리고 있어?” “아, 아냐, 아냐. 내가 무슨 멍을 때렸다고.” “흐음, 수상한데.” “뭐, 안 믿을 거면 말고.” “너, 요즘 계속 멍만 때리고, 말도 잘 안 하고. 이상해.” “그런가……?” “마치 속이 텅텅 비고 있는 것 같은……. 무슨 뜻인지 알아?” “아니.”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키도는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짓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떠나버렸다. 그런가, 요즘 그랬던가……? 잘 모르겠다. 텅텅 비고 있다고? 생각해 보니, 요즘 들어 계속 아무 생각도 없이 지내는 날이 많았던 것 같기도 하고……. “음……, 어라? 내 손이 이렇게 차가웠던가……?” 생각하던 와중, 무심결에 맞잡은 손이 이상할 정도로 차가웠다. 그냥 추운 데에 있어서 차가워진. 그런 느낌이 아닌..
“에리카, 뭐 만들고 있어?” “응? 아아, 꽃반지.” “꽃반지? 갑자기 왜?” “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나 할까…….” “헤에, 그렇구나.” “……왠지 안 물어봐?” “응, 괜찮아. 에리카가 얘기하고 싶으면 얘기해줘도 되지만.” “……뭐야, 그게. 그럼 안 말할래.” “우우, 그렇다고 진짜 말 안 해주기는……. 대신에 꽃반지 만드는 법 알려줘!” “후훗, 알려줄까 말까~” “으엥~ 에리카~” “알았어, 알았어. 알려줄게. 자, 일단 꽃을 두 송이 꺾어서…….” 작은 꽃 두 송이를 꺾은 에리카는 능숙한 솜씨로 꽃들의 줄기를 엮어 시범을 보였다. 그다지 어렵지 않았기에 엘레쥬 역시 금방 꽃반지를 하나 만들어 손가락에 끼울 수 있었다. 아까 만들었던 반지와 방금 만든 반지를 손가락에 하나씩 끼운 다음..
에바는 눈이 나빴다. 정확히 말하자면 본인이 ‘안경을 벗으면 바로 앞조차도 보이지 않으니까.’라고 한 것뿐이니까, 그것이 정말 사실인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내가 ‘한 번만 안경 벗어보면 안 돼?’라고 질문할 때마다 언제나 그렇게 대답했으니까 아마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리고 안경을 벗으면 네 모습이 안 보이잖아. 그건 별로야.’라는 말도 꼭 덧붙였다. 그것은 충분히 기쁜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연인의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고 싶은 욕망이란 게 있는 법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 * * 파란 하늘이 점점 주홍빛으로 물들어가는 시각이었다. 이미 많은 학생들이 하교를 마치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학생회의 일 때문에 에바리스트는 이런 시각이 될 때까지 ..
비 오는 날이면 언제나 그 때의 꿈을 꾼다. 그 때 이후로, 수십 수백 번이나 반복된, 그러나 언제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그 때를, 계속.내 꿈에서 너는 또 다시 죽는다. 모든 것이 검게 물들어버려서, 피조차도 검게 물들어버려서, 마치 네가 어둠 속으로 묻히는 것 같은, 나마저도 어둠 속으로 묻혀버릴 것 같은 그 때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네 모습도 보이지 않고, 나는 그저 무기력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무섭게 쏟아지는 비 사이로 하늘을 찢으며 번개가 내리치고, 마지막 힘을 다해 이쪽을 바라보며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는 네 피투성이 모습을 보고그 순 간잠 에 서깨 어 나 지. * 눈을 떴을 때, 이미 비는 잦아들고 있었다. 얼굴에 흐른 식은땀과 어느새 흘러내렸는지 모를 눈물을 닦아내고 에리카는 다시 자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