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ida Stella
[레오이즈]커피 한 잔의 여유 본문
츠키나가 레오는 커피를 좋아한다. 그것도 커피 외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을 블랙 커피를. 그건 고향을 떠나온 먼 타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커피는 만국공통으로 인기 있는 기호품 중 하나이니 여기까지는 전혀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이 쓸데없이 커피에 진심인 나라는 지들 스타일이 아닌 커피는 취급조차 안 한다는 점이었다. 타지인을 배려해주면 뭐 어디가 덧나기라도 하나? 정작 당사자인 츠키나가 레오는 이쪽에 대해선 별로 상관하지 않고 있었지만, 세나 이즈미에게 있어서는 아주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 거슬리는 문제였다. 그야 레오 군은 내 펫이니까? 펫이 먹는 것도 신경 써야 하는 게 주인의 의무 아니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집에서 직접 커피를 내린 것까지는 좋았다. 응, 절대 나쁘지 않았다. 레오까지는 아니더라도 세나도 커피를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고, 이젠 굳이 커피 한 잔 마시기 위해서 카페까지 갈 필요도 없었고─심지어 이 나라는 테이크아웃조차 해주지 않는 곳도 수두룩했다─, 카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취향인 커피를 찾을 필요도 없었고……. 이외에도 수많은 장점이 있을 터지만, 이 모든 것을 압도하고도 남을 단점이 하나 있었다.
“와, 세나가 직접 커피 내려준 거야?”
“자, 잠깐만. 그거 마시지 마!”
“왜? 괜찮기만 한데.”
딱 보기에도 수상해보이는 검은 액체를 한 모금 레오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듯 괜찮다는 말을 내뱉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냄새부터 탄내 풀풀 나고 난리났는데. 그런 세나의 생각을 기우라고 말하는 것처럼 레오는 아무렇지 않게 커피를 홀짝였다. 냄새만 좀 이상하고 맛은 그럭저럭 괜찮나…? 한껏 불안하던 마음이 조금은 진정된 세나는 레오에게 손을 내밀었다.
“레오 군, 나도 한 모금만.”
“으, 응? 세나 블랙 잘 못 마시지 않았어?”
“그러니까 한 모금만 마신다니까.”
내가 내렸는데 못 마실 거라도 있어? 세나의 말에 결국 레오는 어쩐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자신이 마시고 있던 컵을 세나에게 내밀었다. 대체 뭐야, 그 반응은? 레오 군 주제에! 뭔가 숨기는 게 있는 레오의 모습에 세나는 어쩐지 불안함을 느끼면서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너 지금 이걸 괜찮다고 한 거야!? 이게!? 제정신이야!?”
“그치만 세나가 직접 내려준 거잖아!!!”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어!? 안돼! 더 마시지 마! 압수!”
입에 대자마자 찌르르 퍼지는 쓴맛에 세나는 레오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황급하게 잔을 높게 쳐들었다. 지금 이걸 괜찮다고 한 거야? 원래 커피가 쓰다고는 하지만, 커피의 쓴맛을 벗어난 엄청난 쓴맛에 세나는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가까스로 싱크대에 커피를 모두 쏟아부은 세나는 괜히 레오에게 눈을 흘겼다. 뭘 또 음식을 버리면 벌 받는다, 야. 이게 음식이긴 한 거냐고!
……그렇다, 자신이 내린 커피의 유일한 단점은 엄청나게 맛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걸 마실 바엔 차라리 사약을 마시는 게 더 맛있을 지경이었다. 너무나도 쓴맛에 생리적으로 흘러나온 눈물을 닦으며 세나는 신경질적으로 장비를 정리했다. 눈치가 보인 건지, 아니면 뭔지 방금까지 자신의 커피(?)를 빼앗긴 레오가 은근슬쩍 옆에 다가와서 정리를 도왔다. 어쩐지 분해보이는 세나의 눈치를 살살 살피며 그는 아까보다 부드러워진 어조로 말을 걸었다.
“어쩐 일로 직접 커피를 내릴 생각을 했어.”
“……그야 별로 안 어려워보였단 말야.”
“난 정말 괜찮았는데.”
“조용히 안 해?”
세나가 조용히 하란 말과 함께 한 번 더 째릿, 하고 눈을 흘기자 레오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괜찮을 게 따로 있지, 그게 괜찮다고? 어디 아픈 거 아냐? 제딴에는 위로랍시고 한 말이겠지만, 그게 더 세나의 성질을 건드렸다. 차라리 맛없다고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분했다. 이 세나 이즈미가? 그딴 커피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결심했다. 그 누가 마셔도 뭐라 할 수 없는, 아니 최고라고 칭찬할 만한 커피를 내리겠다고.
* * *
커피의 세계는 심오하고도 복잡했다. 원두만 해도 그 종류가 수십 수백에 달했다. 아라비카? 로부스타? 블루마운틴? 케냐AA는 또 뭔데? 그냥 다 같은 커피 아니었어? 배전이란 건 또 뭐고? 제대로 알아보자니 아예 시간을 따로 할애해서 공부를 해야 할 지경이었다. 일은 물론 자기계발에 쓸 시간도 부족한 그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노력 하나로 지금 이 자리까지 온 자신이었다. 요리를 못하는 편도 아니었으니 뭐가 문제인지만 알면 생각보다 금방 해결될 것 같기도 했다.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는 점이 문제긴 했지만.
“그러니까 원두를 미리 갈지 말고, 굵기도 너무 굵어서는 안 되고…….”
“세나~ 또 커피 연구 해? 난 진짜 괜찮았다니까-”
“내가 안 괜찮다고 했지.”
영 도움이 안 되는 레오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세나는 오늘 치 연구를 마친 커피를 홀짝였다. 향긋한 커피향이 온몸에 감돌았다. 카페인은 수면에 방해가 되니까 많이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연구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연구의 성과가 있는지 첫날의 커피라고도 부르기 어려운 그 끔찍한 액체에 비하면 이제는 커피라고도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향과 맛이었다. 그러나 아직 뭔가 부족했다. 어딘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세나는 잔을 비우고, 어느샌가 자신에게 들러붙어 있는 레오를 떼어냈다.
“세-나- 언제까지 혼자만 마실 거야? 커피 그렇게 자주 마시는 편도 아니면서.”
“아직은 안돼.”
“우-...”
명백하게 속상한 얼굴을 하는 레오에게 단호하게 대꾸하면서 세나는 빠른 속도로 장비들을 정리했다. 그렇지만 아직은 누구에게 내보일 만한 건 아니었다. 적어도 레오에게는 더더욱.
* * *
“자, 레오 군. 여기 커피.”
“헉, 이건 뭐지? 그림도 그려져 있어! 세나가 그린 거야? 뭘 그린 거야? 아, 잠깐! 말하지 마! 망상할 테니까!”
“하아? 딱 봐도 백합이잖아.”
“우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커피나 마셔.”
세나의 일갈에 레오는 입을 삐죽거리면서도 순순히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다. 뾰로통한 얼굴이 환하게 풀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우와, 세나! 이거 진짜 맛있어! 어떻게 한 거야?”
“당연하지. 누가 내린 건데?”
“그야 우리 세나가? 역시 세나가 최고야~♪”
“진짜, 낯부끄러운 소리를 잘도 한다니까…….”
퉁명스럽게 중얼거리면서도 세나는 기분 좋은 듯이 살짝 웃었다. 앗, 명곡이 태어날 것 같아! 제목은 세나가 직접 내려준 커피의 노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종이에 음표를 그려넣는 레오는 누가 봐도 기분이 좋아보였다. 이런 반응을 원했던 거였다. 물론 본인한테는 말해줄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때와는 다른, 커피 특유의 쌉싸름한 향이 피렌체의 어느 한 집을 기분 좋게 가득 메웠다. 다르게 말하자면, 행복의 향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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