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Lucida Stella

[오리티샤]복수 본문

2차/단편

[오리티샤]복수

시나모리 2016. 6. 5. 14:04

 잊고 있었다. 아니, 잊으려 했다는 게 더 맞는 말일까. 하여튼 잊고 싶었다. 내가 알고 있었던 그와, 내가 알게 된 그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에.

 그렇지만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목적은…….


* * *


 “휴도르의 신전?”

 “응, 가본 적 있냐구.”

 “음, 글쎄…….”

 레온티시아는 오리온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음, 가본 적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말이야.”

 “어?”

 갑작스러운 말에 오리온은 놀란 듯 눈을 깜빡였다. 레온티시아는 그의 반응이 재밌는지 웃었다. 여느 때와 같은 부드러운 미소가 아닌, 독사과 같이 요염하고도 사악한 미소를.

 “묻고 싶은 건 따로 있잖아?”

 “…….”

 예상치 못한 질문에 오리온은 입술을 꼭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레온티시아는 고개를 숙인 오리온의 눈에 자신의 눈을 맞추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숨길 필요 없어. 다 알고 있는걸.”

 오리온의 무응답에도 레온티시아는 여느 때와 다른 그 미소를 지으며 조곤조곤 속삭였다. 마치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지금 여기에는 우리 둘밖에 없어. 엿들을 사람도 없어. 그니까 물어봐. 원하는 대로 대답해 줄 테니까.”

 “……그래. 잊고 있었지. 아니, 잊고 싶었어.”

 “그래서?”

 “물론 이제 다 소용 없는 얘기지만- 그래서, 너야?”

 “……너, 내 망토가 왜 붉은색인 줄 알아?”

 오리온의 질문에 레온티시아는 갑자기 관련 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오리온은 동요하지 않고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대답이 나오지 않자, 레온티시아는 갑자기 큰 목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응? 모르겠어? 이렇게 쉬운 걸! 그야 붉은색이어야 피가 튀어도 티가 안 나잖아!”

 말을 마친 그녀는 또 다시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여태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름 끼치는 웃음 소리. 한참을 웃던 그녀는 망토를 풀어 헤쳤다. 맥 없이 그녀의 발 밑으로 툭 떨어진 붉은 망토는 마치 피웅덩이 같았다. 아무런 미동이 없는 오리온을 싱글싱글 웃는 눈으로 올려다 보던 레온티시아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냐고? 그런 건 물어도 대답해줄 수 없어. 왜냐고? 그동안 내가 죽인 사람이 너─무 많거든! 그걸 하나 하나 기억할 수는 없잖아? 그니까 정답은─ 네가 생각하는 대로!”

 장난스럽게 말하며 그녀는 자신의 손을 하늘로 쳐들었다. 새하얀 달빛을 받은 손은 무서울 정도로 창백하게 빛났다. 너무나도 창백해서, 사람의 손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계속 웃고 있었으나, 이제 그 웃음 소리는 반쯤 우는 듯한 소리로 들렸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물론 난 거짓말쟁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없지.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거짓말 할 이유도 없는데 왜 거짓말을 한담. 이건, 사실이야.”

 그렇구나, 넌 이미 알고 있었구나.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는데 날 속였구나.

 “어떻게 할래? 괜찮아, 쉬워.”

 레온티시아는 오리온의 손을 가만히 잡아 자신의 목으로 가져갔다. 역시 달빛을 받아 창백하게 빛나는 목은 무서울 정도로 가냘팠다. 오리온의 손이 떨리는 걸 느낀 레온티시아는 웃으며 가만히 속삭였다.

 “저항하지 않을게. 소리도 지르지 않을게. 넌 그냥 손에 힘만 주면 돼. 아주, 잠깐만.”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오리온의 손을 좀 더 가까이 자신의 목으로 가져가고는 손을 놨다. 잠시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가 싶더니, 얼마 안 가 아래쪽으로 툭 떨어졌다.

 “……젠장.”

 “이것도 어려워? 그럼 이거 빌려줄게, 이렇게 할래?”

 레온티시아는 어디선가 단도를 꺼내 오리온의 손에 쥐어주었다. 옷자락을 아무렇게나 풀어헤친 그녀는 단도를 쥔 오리온의 손을 다시 감싸 쥐고 자신의 가슴쪽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또 다시 웃었다.

 “이건 더 쉽지? 자, 망설이지 말고.”

 “…….”

 “내 손에 죽었을 「그녀」를 생각하면서.”

 그녀의 말에 쓸데없는 감정이 사라졌다.


* * *


 어째서 그런 거짓말을 했냐구? 그야 간단하지. 이게 바로 내 복수니까.


 네 손으로 날 죽여. 내 마지막 모습을 영원히 기억해. 그리고 괴로워 해.


 ────이게, 내 아버지를 죽인 너에 대한 내 복수야.

'2차 >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보노엘]잠이라는 것은  (0) 2016.06.05
[오리티샤]Slip  (0) 2016.06.05
[Sound Horizon]봄의 화환  (0) 2016.06.05
[오리티샤]눈물에서 피는 꽃  (0) 2016.06.05
[리리리즈]선물  (0) 2016.06.05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