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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ida Stella

[오리티샤]Slip 본문

2차/단편

[오리티샤]Slip

시나모리 2016. 6. 5. 14:04

 용모 단정. 성격 우수. 품행 우수. 거기다 성적도 우수. 이것 외에도 내세울 것은 수도 없이 많다. 약간은 자그마한 키마저 그녀에게는 절대 단점이 아니었다. 그녀가 그것보다는 아주 조금이라도 더 컸다면, 그 완벽한 균형을 무너뜨릴 거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러나 신은 공평한 듯, 어딜 봐도 완벽할 것 같은 그녀에게도 단점은 있었다. 그것은────

 “으아아아앗!?”

 ‘쿵─’

 “아야야……, 아파라…….”

 장애물을 못 보는 건지, 아니면 균형 감각이 평범한 다른 사람과 다른 건지, 어째서인지 그녀는 ‘잘’ 넘어졌다. 심지어는 자기 발에 걸려서 넘어지는 일도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있었으니 말은 다 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녀의 유일한 단점이었다.

 

* * *

 

 “아앗!?”

 모퉁이를 막 돌았을 찰나, 누군가가 갑자기 튀어나와 그와 힘껏 부딪쳤다. 체격 덕분인지, 다행히 그는 좀 비틀거리는 정도에서 그쳤지만, 자신과 부딪친 이는 그만 뒤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으으, 아파라…….”

 “괘, 괜찮으세요?”

 “앗, 아뇨. 일상인 걸요. 오늘은 평소보다 더 아프긴 하지만…….”

 아까 충격이 느껴졌을 때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키는 자기보다 머리 하나 정도로 작았지만, 넥타이 색깔을 보니 자신보다 상급생이었다. 그녀는 그가 내민 손을 붙잡고 몸을 일으키며 익숙한 듯 치마를 툭툭 털었다. 그리고 ‘고마워요.’ 자그맣게 속삭이며 눈웃음을 치고 발을 재게 놀려 사라졌다.

 뭐랄지, 굳이 존댓말 안 해도 괜찮은데 말이지.

 

*

 

 “꺄아아────!!!”

 그 날 이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아마 하루? 이번엔 누군가가 계단에서 넘어질 것 같아 손을 붙잡아 주었더니, 왠지 모를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엣, 그러니까……, 너는…….”

 “아, 안녕하세요…….”

 “또 신세를 져버렸네……. 네 이름이……, 오리온이었던가? 1학년 7반!”

 “……어떻게 아셨어요?”

 “어라, 너 나 몰라? 내 이름은 레온티시아! 이렇게 덜렁대긴 하지만 그래도 학생회장인데…….”

 “아, 네…….”

 솔직히 말해서, 오리온은 여태까지 학생회장이 누군지 잘 모르고 있었다. 가끔 조회 때 학생회장이 뭔가를 발표하기는 했으나 그때마다 그는 거의 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탓에 이름만 몇 번 들었지, 얼굴을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런 사람이었을 줄이야.

 “뭐, 모를 수도 있으니까 그건 넘어갈까. 어쨌든 고마웠어! 지금은 내가 지갑이 없어서 안 되고, 나중에 보면 매점에서 맛있는 거 사줄게!”

 “아뇨, 굳이 그러실 필요는…….”

 “앗, 늦겠다! 그럼 다음에 또 볼 수 있으면 또 보자!”

 ‘……의외로 마이페이스네.’ 이번에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인 듯, 조심스레 발을 내딛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오리온은 한숨을 쉬었다. 근데 2일 연속 저 선배를 본 건 우연이겠지?

 

* * *

 

 ‘쾅!’

 어딘가 불안하고도 익숙한 느낌이 나서 고개를 살짝 들어 앞을 바라봤더니 아주 제대로 넘어진 ‘그 선배’가 있었다. 그러니까 하얀색에……. 잠깐, 이런 거 서술하지 말라고.

 “아야야…….”

 “저, 저기……, 괜찮으세요……?”

 “아, 응……. 또 신세 져버렸네…….”

 “……그러게요.”

 “어쨌든 또 만났으니까 약속은 지켜야지. 지갑, 지갑, 지갑…….”

 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져보았으나 나오는 건 먼지 뿐. 아아, 이번에도 놓고 나와 버렸나 봐────!!! 레온티시아는 한숨을 푹 쉬었다. 정말, 나 바보 맞나 봐.

 “저기, 선배. 뭐 까먹으신 거 없으세요?”

 “그야 지갑……, 아, 맞다!!!”

 ‘미안!!!’을 외치며 급하게 몸을 돌린 그녀는 뛰어가려다 방금 넘어진 것을 직감한 듯 빠른 걸음으로 또다시 멀어져갔다.

 ‘……빠르다.’

 이때까지는 별 감정이 없었다. 정말, 이때까지는.

 

*

 

 그리고 비슷한 일의 반복────

 

* * *

 

 “하암…….”

 잠에서 깼을 때는 해가 저물어가는 저녁이었다. 어제 너무 늦게 잤는지 종례 후 잠깐만 눈을 붙인다는 게 이 시간까지 자 버린 모양이다. 부스스해진 머리를 손으로 대충 정리하며 오리온은 짐을 챙겼다. 아, 오늘은 다른 거 하지 말고 씻고 바로 자야지.

아무도 없는 운동장은 저녁놀로 붉게 물들어 쓸쓸한 느낌이었다. 점심시간이나 하교 시간에는 꼭 몇몇은 남아서 축구라던가 다른 공놀이를 하곤 했었는데. 남자애들 특유의 시끄러운 소리가 지금은 하나도 들리지 않아 기분이 미묘했다. 이 시간대의 운동장은 이런 느낌이구나. 좀 새로운걸.

 그때 앞에 누군가의 인영이 보였다. 저 뒷모습 어쩐지 낯이 익는데──── 잠깐 누군지 고민하던 찰나, 그 사람은 갑자기 비틀 거리더니 흙먼지를 잔뜩 날리며 제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아, 설마……?

 “서, 선배……!?”

 “으, 아파…….”

 그래도 평소라면 옷이라던가 머리를 털며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을 텐데, 이번에는 고통이 심한지 상처가 난 것 같은 무릎을 꼭 부여잡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숙여 다리를 살짝 보니 날카로운 돌부리에 긁힌 듯 붉은 피가 송골송골 흘러나오고 있었다. 거기다 운동장에서 넘어진 탓에 주위에 잔뜩 묻은 흙먼지는 덤.

 “괘, 괜찮으세요!?”

 “으응, 괜찮아. 집에 가서 씻고 연고 바르면 될 거……, 으…….”

 “업혀요. 이거 그냥 놔두면 덧나요. 얼른 양호실 가서 치료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아, 아냐. 그냥 내가 걸어서 갈게.”

 “고집부리지 말고 얼른 업히라니까요? 지금 피 철철 흐르는데 뭘 걸어가요. 자, 얼른.”

 “…….”

 자신이 생각해도 무릎의 상태가 심각했기 때문에 레온티시아는 더 대꾸하지 않고 조용히 오리온의 등에 업혀 얼굴을 묻었다. 그녀는 생각했던 것보다 가벼웠다.

 “아, 정말. 이렇게까지 바보 같은 줄이야…….”

 “바보라서 미안하네요, 칫.”

 “……죄송합니다.”

 

*

 

 “이거……, 상태가 좀 심각한데요.”

 “히에, 그 정도야?”

 “아파도 참아요.”

 “으…….”

 밝은 곳에서 본 상처는 아까 붉은 햇빛 밑에서 봤을 때보다 상태가 훨씬 심각했다. 피는 그럭저럭 멈추긴 했지만, 잔뜩 묻은 흙먼지와 엉겨 붙은 피는 그다지 보기 좋은 것이 아니었다. 거기다 넘어지면서 손을 내디뎠는지, 손도 흙투성이에다 생채기가 가득했다.

시간이 늦었던 탓에 양호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양호실 문이 번호 키로 잠겨 있었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들어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급한 대로 소독한 다음에 연고라도 바르면 될까. 그게 제일 낫겠지.

 본인이 아무래도 직접 씻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오리온은 물티슈로 상처 부위를 살살 문질렀다. 상처 부위에 물이 닿자 따끔거리는지 레온티시아는 얼굴을 찡그렸다. 대충 흙먼지를 다 닦아냈다고 생각한 그는 솜에 알코올을 묻혀 상처 부위를 살짝 닦아냈다. ‘으.’ 자그마한 신음이 들렸다. 고통 탓인지 눈에는 자그마한 눈물방울이 매달려 있었다.

 “그러니까 조심하라니까…….”

 “나도 넘어지고 싶어서 넘어지는 건 아니란 말이야.”

 “정말, 대체 왜 그렇게 잘 넘어지는 거예요?”

 “그걸 알면 이렇게 넘어지지는 않았겠지?”

 “……아, 네.”

 “에, 자, 장난이야! 어쨌든 잘 모르겠지만……, 난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평형감각이 독특하거나 모자란 게 아닐까.”

 “…….”

 “으, 아파. 살살 하라구!”

 “금방 끝나요.”

 말은 퉁명스럽게 했지만, 제법 세심하게 치료를 마치고 오리온은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아, 오늘은 일찍 자서 잔다고 했는데 지금 뭐하고 있는 거람. 그가 막 한 걸음을 내디뎠을 때, 레온티시아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가 뒤를 돌아보자, 그녀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무리고, 내일 학교 끝나고 시간 있어? 맛있는 거 사줄게. 어때?”

 “……내일 하루는 선배가 안 넘어지시면 생각해 볼게요.”

 “엑, 너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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