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Lucida Stella

[아이에바]기억 이전의 기억 본문

2차/단편

[아이에바]기억 이전의 기억

시나모리 2016. 6. 5. 13:58

 “에바리스트! 이것 봐. 조각을 이렇게나 많이 모았어!”

 품에 초록빛과 파란빛이 도는 조각을 잔뜩 안은 채 인형은 들뜬 듯 웃으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 세계에서의 생활한 시간 덕에 에바리스트는 그 조각들이 자신을 비롯한 전사들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그때마다 으레 기억을 찾아줄 전사들에게 ‘조각을 이렇게나 많이 모았어!’라며 자랑하면서 웃는 인형의 버릇 또한 알고 있었기에, 그는 이번에 기억을 찾는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음음……, 이번이 몇 번째 기억이더라…….”

 “내 기억이 맞다면 세 번째 기억이다, 지시자.”

 “어머, 벌써? 기뻐라♬ 아, 그럼 아이자크 좀 불러줄래, 에바리스트?”

 “물론, 기꺼이.”

 기억을 찾는 과정에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정확히는 그렇게 추정되는─ 이가 곁에 있어야 했다. 원래는 조각과 함께 그 상대를 데려오는 인형이었지만, 오늘 따라 흥분한 듯 그것을 잊어버린 인형이었다. 물론 그다지 상관은 없었다. 벌써 3번째 기억이라는 사실에 그도 약간은 들떠 있었으며, 그쯤이야 별로 힘도 들지 않으니 에바리스트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자크, 지시자가 부르는군.”

 “아, 그래? 아까 조각을 잔뜩 품에 안고 신나게 뛰어가더니, 네 차례였구나. 자, 얼른 가자고. 오래 기다리게 하는 건 실례니까 말이야.”

 “그러지.”

 이번이 세 번째였던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이자크가 에바리스트를 쳐다보더니 살짝 웃었다. 이번에도 내가 나오려나─ 그들의 기억에는 언제나 서로가 등장했기 때문에 서로가 기억을 찾는 날엔 자신의 기억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었다. 그 탓일까, 아이자크도 조금 들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어, 왔어? 그럼 시작해도 되지?”

 에바리스트가 고개를 끄덕이자 인형은 조각을 품에 껴안은 채로 그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조각이 아까보다 영롱하게 빛을 뿜는 느낌이 들어 에바리스트는 눈을 감았다. 얼마 안 가 깨질 것 같은 두통과 함께 머리 한 구석에 뿌옇게 끼어 있던 안개가 걷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러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머릿속에 깊게 스며들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두통이 차츰 사라져가는 것을 느끼며 그는 눈을 다시 떴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호기심에 가득 찬 인형의 얼굴, 그리고 그의 맹우의 얼굴. 아이자크의 얼굴을 본 순간, 갑자기 아까 되찾은 기억이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더니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이상한 감정이 느껴졌다.

 “…….”

 “왜 그래, 에바?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걸.”

 “어라, 이번 기억은 불쾌한 기억인거야? 왜 그래? 응? 말해줘!”

 들려오는 걱정과 재촉에 에바리스트는 그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욕설을 중얼거리고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때까지의 기억과는 떨어져 있는 과거의 기억. 그 기억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자신의 머릿속을 이리저리 헤집고 깊이 가라앉아 있던 복잡한 감정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아주 불쾌하면서도 괴로운……

 “미안하다, 지시자. 조금만 있다 말해주지. 지금은 혼자 있고 싶다.”

 “아, 응…….”

 “정말, 에바. 대체 뭘 봤길래……. 이따가 데리러 올까? 아님?”

 “……미안.”

 아직은 흐릿한 기억을 다시 떠올리기 위해 온 신경을 거기에 집중했다. 이미지가 선명해지면 선명해질수록 불쾌한 감정과 왠지 모를 구토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딘가 너무나도 아련하면서도 그리웠던, 언젠가부터 원해왔던 그 무언가도 함께 다시 떠오르는 것 같아서────

 “……젠장.”

 

* * *

 

 요마가 휘두른 검이 바로 옆의 공기를 갈랐다. 운 좋게 피하긴 했지만, 하마터면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을 정도의 강한 공격이었다.

 “에바리스트! 괜찮아?”

 “큭…….”

 방금 공격의 여파인걸까, 볼에서 살짝 흘러내리는 피를 본 인형은 다급한 듯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확실히 자신에게 불리하게 상황이 돌아가고 있었고, 인형 또한 그것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지금은 여기까지인가……. 자신을 부르는 인형의 손짓에 에바리스트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되겠어, 교체야. 그럼 아이자크, 부탁해.”

 “뭐, 맡겨달라고.”

 기세등등하게 나간 아이자크였지만 확실히 강한 상대였던 탓에 피 튀기는 공방전이 계속해 이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승리로 판이 기울어져 가는 것 같아 안도하고 있었을 찰나에────

소름 끼치는 괴성과 함께 요마가 휘두른 검이 불길한 소리를 내며 공기를 갈랐다. 단말마의 비명과 자그맣게 무언가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웠다.

 “……에바리스트?”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어떤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빠른 속도로 사라져 버렸다. 다시 떠올리려 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거기다 그 이후에 밀려온 구토감에 생각을 집중할 수도 없었다.

 “에바! 괜찮아?”

 오른쪽 눈을 손으로 부여잡은 채 다급하게 말을 거는 아이자크의 모습에 또 다시 순간, 무언가가 겹쳐 보였다.

 

* * *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그 때의 이미지는…….

 안경을 벗고 손가락을 살짝 눈에 갖다 대 보았다. 손가락이 닿자마자 아픔과 함께 본능적으로 눈이 감겨져 버렸다.

 아픔 탓인지, 아니면 왠지 모를 눈물이 눈에 살짝 고였다.

'2차 >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리티샤]눈물에서 피는 꽃  (0) 2016.06.05
[리리리즈]선물  (0) 2016.06.05
[지수라무]소나기  (0) 2016.06.05
[수냐우르]나를 위해서  (0) 2016.06.05
[세토마리]기다리는 걸 잘하는 마리씨  (0) 2016.06.05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