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ida Stella
[쿠로카와 스즈네]붉은 꽃 본문
피가 묻은 속옷을 아무렇게나 쑤셔넣으며 스즈네는 작게 혀를 찼다. 놀라거나 두렵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떤 건지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고, 때가 온 것뿐이었으니까. 다만 거추장스러운 게 하나 더 늘었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아, 지금 이 불쾌감도 ‘이 현상’의 영향 중 하나인가? 그렇다고 생각하니 더 불쾌해졌다.
몸은 매우 정직했다. 그 몸의 주인이 기억도 하지 못할 정도로 오래된 옛날부터 그 반대의 성별로 살아왔더라도, ‘그’의 생각, 가치관, 생활습관, 하물며 그가 그 자신을 진짜 「남자」로 여긴다 하더라도, ‘그녀’의 몸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충실하게 「여자」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로 확실해졌음을, 스즈네는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절대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차라리 여자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하다못해 남자로 살아가는 것을 거절했다면?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는 것을 스즈네는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이리저리 뒤틀리고 꼬인 인과는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거기다 기억도 하지 못하는 옛날 일을 지금 들춰내봤자 도움이 되는 것이 없다는 것도, 상처만이 남는다는 것도 역시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거, 꽤 짜증나네…….”
그래, 이것도 역시 늘 그랬던 것처럼, 불만은 여기까지만 표출하고 묻어버리자. 아무도 모르게, 모두가 조용히 지나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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