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ida Stella
[에인 C. 길모어]트라우마 본문
“이건 절대 유쾌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미 서너 번을 반복한 말을 에인은 다시 입에 올렸다. 본인 스스로도 꽤 입에 올리기 싫은 이야기이기에, 같은 말을 계속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다 비어버린 잔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에인은 상대방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는 충분히 말했습니다. 그래도 듣고 싶으시다면, 들어 주십시오.”
뽑아도 뽑아도 뿌리만 남아 있으면 다시 자라나는 잡초마냥, 영원히 저를 괴롭힐 이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 * *
벌써 10년은 된 일이었다. 날짜는 제대로 기억나지 않지만, 안경을 갓 맞췄던 것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흐릿했던 시야가 다시 환하게 밝아진 날이었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보면 하필이면 그날 안경을 맞췄나 싶었다. 그 모습을, 그렇게 선명하게 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테니까.
제법 사이가 좋았던 강아지─이젠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정말 작고 여렸던 아이가. 나는 그 아이를 좋아했고, 그 아이도 가족 중에서 유독 날 잘 따르곤 했다. 차라리 그러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일은 정말 순식간에 일어났다. 내 품에 안겨 있었던 그 작은 아이가 갑자기 뛰쳐 나가는 것도, 그 순간 커다란 차가 그 아이를 덮치는 것도. 바로 뒤에서 오시던 부모님의 손이 내 눈을 덮었지만, 그때 일어난 참상을 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흐르기 시작한 피는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 하얀 털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고, 겨우 형체만 유지하고 있는 몸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차라리 고깃덩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정도로, 방금까지 살아 있었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선명해진 시야는 그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비춰냈고, 그 광경은 내 망막에 아주 또렷하게 새겨졌다.
그 이후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얼마 안 가 정신을 잃었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건 아버지가 무언가 주문을 읊는 소리였다. 무슨 주문인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사흘밤낮을 꼬박 앓았던 것 같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어머니가 안고 계셨던 또 다른 강아지를 보고 바로 그 때의 모습이 떠올라서 다시 쓰러졌었고. 다시 깨어났을 때는 동물을 보고 바로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그 때의 모습이 겹치는 것은 사실이었다. 어떤 동물을 봐도, 계속, 그 모습이…….
그리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로.
* * *
“……말씀 드렸습니다. 유쾌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이야기를 마친 에인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담담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기억 마법을 쓰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상대방에게 에인은 그런 질문이 익숙한 듯 대답했다.
“아버지가 이미 시도해보셨습니다만, 잘 안 됐다고 하셨습니다. 분명 마법을 썼을 텐데 동물만 보면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고. 더 강한 마법을 쓰기에는 다른 기억들에도 영향이 끼칠 것 같아서 결국 포기하셨다고 합니다. 웃긴 일이죠. 결국 그 아이와 관련된 일은 모두 잊어버리고, ‘그 일’만 기억하게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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