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ida Stella
[레니리제]소녀 인형의 밤 본문
어쩐지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아니, 애초에 인형이니까 잠이란 것을 잘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어쩐지 이 시간대가 되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있고 싶었다. 그런데 어쩐지 오늘 따라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읏차.”
주위를 몇 번 둘러보던 엘리제는 우물 밖으로 살짝 빠져나왔다. 어차피 애초에 이 숲은 낮에도 어두컴컴해서 사람이 잘 오지 않는 곳인 데다가, 설마 미쳤다고 이 밤에 이 숲을 올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였다. 그러니 인형인 자신이 혼자 돌아다닌다 해서 의심을 받을 일 따위, 생기지 않을 것이다.
* * *
“이렇게 올려다 보는 밤하늘은 새롭네-”
동그랗지 않은 밤하늘을 바라보는 건 얼마만이었더라? 최근에 우물 밖을 나오기는 커녕, 밤하늘을 올려다 본 지도 꽤 오래됐다는 것을 엘리제는 떠올려냈다. 메르도 같이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요즘 메르는 좀 바쁜 것 같아서 내 상대도 잘 안 해주고……. 좀 여유로워지면 다음엔 메르랑 같이 산책 나오기로 할까? 응, 그래야겠다. 그럼 슬슬 돌아가볼까? 메르가 걱정할 테니까.
짧은 산책을 마치고 그녀가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건너편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인가? 하지만 그 생각이 틀렸음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더니 그녀 앞에 ‘그 무언가’가 툭 튀어나와 큰 소리로 외쳤다.
“Happy Halloween~! Trick or Treat!?”
“흐엑!? 뭐, 뭐라고!?”
“응? 뭐야, 어린애잖아. 사람을 잘못 골랐네.”
“저기, 나한테 볼 일 없으면 나 가도 되지?”
놀라는 것도 잠시, 앞에 서있는 상대는 무시하고 혼자 무언가 막 중얼거리는 모습에 짜증이 난 엘리제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뭐야, 저 호박 같은 애는? 갑자기 놀래키지를 않나,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막 늘어놓지 않나. 저런 애에게 뺏길 시간 따위는 없었다. 메르가 걱정한다구?
“앗, 저기!? 이렇게 만난 것도 우연인데 잠깐만 같이 놀지 않을래?”
“싫어. 귀찮아.”
“에이~ 그래도! 나 또래의 귀신 만난 거 정말 오랜만이란 말야!”
“귀신 아니거든!?”
또래의 상대를 만난 게 기쁜 듯 조잘거리는 소년과 달리, 엘리제는 화가 난 듯 사나운 말투로 쏘아 붙였다. 눈이 없나? 이 엘리제님이 어딜 봐서 귀신으로 보여? 애초에 이렇게 예쁜 귀신 봤어? 아니, 애초에 왜 이렇게 따라와!?
“응? 귀신 아냐? 그럼 뭐야? 아, 인형이구나! 음, 그럼 예쁜 인형 아가씨! 같이 놀지 않을래?”
“아니, 별로.”
“에이~ 그러지 말고! 이름이 뭐야? 난 레니야! 응? 이름이 뭐야?”
“……엘리제.”
“엘리제? 예쁜 이름이네! 그럼 엘리제, 같이 놀지 않을래? 응?”
이렇게 차갑게 굴면 풀이 죽을 만도 한데, 레니는 풀이 죽기는 커녕 끈질기게 따라왔다.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면 정말 우물까지 쫓아올 기세라 이름을 가르쳐주자 그것에 더 신이 난 듯 레니는 그녀의 주위를 방방 돌며 계속 놀자고 권유해왔다.
“아, 정말! 귀찮다니까!? 그리고 너, 완전 정신 없거든!? 저리 가주지 않을래!?”
“후웅……, 하지만 말했잖아! 나 내 또래 만난 거 완전 오랜만이라고! 내가 재밌는 거 보여줄게, 잠깐만 같이 놀아주면 안 돼? 응?”
“재밌는 거?”
“응응! 재밌는 거! 자~”
‘재밌는 거’라는 얘기에 혹한 듯, 엘리제가 관심을 보이자 레니는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짝짝 쳤다. 그러자 여러 가지의 작은 불꽃이 손바닥에서 막 터져나와 공중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엘리제가 신기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 반응이 마음에 들은 듯 레니는 연신 손뼉을 치다가 불꽃이 사들라들자 씨익 웃었다.
“어때? 재밌지?”
“음……, 재밌다기보다는 뭐, 신기하기는 하네.”
“뭐 어때! 보고 즐겼지? 그렇지?”
“……응.”
엘리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레니는 기쁜 듯 꺄르르 웃었다. 얘는 대체 뭐가 그렇게 재밌담? 연신 웃기만 하고 말이야. 근데 지금 시간이 얼마나 흘렀더라? 아, 이러다가 정말 메르가 걱정하겠어.
“아, 맞아! 여긴 신기한 게 되게 많더라? 같이 가지 않을래?”
“아니, 나 돌아가봐야 돼. 메르가 걱정할 거라구. 지금도 몰래 나왔단 말야.”
“메르? 그게 누군데?”
……이크. 실수해버렸다. 분명 쟤 성격에 메르가 누구냐고 알려줄 때까지 계속 따라올 텐데! 그러다가 우물까지 따라오면? 메르는 지금 바쁜걸. 얜 분명 메르를 귀찮게 할 거야.
“있어. 나한테 엄청 소중한 사람.”
“그래? 나도 한 번 보고 싶어! 같이 가면 안 될까?”
“안 돼. 메르는 지금 바빠. 그러니까 너도……, 음, 너한테 소중한 사람을 찾아가는 게 낫지 않아? 분명 있을 거 아냐.”
“소중한 사람?”
“응, 소중한 사람.”
소중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레니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도 잠시, 누군가가 떠오른 듯 레니는 손뼉을 짝하고 치며 웃었다.
“아, 떠올랐어! 음……, 이렇게 빨리 헤어지는 건 아쉽지만! 오늘은 우리 둘 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그래그래, 너도 너무 늦기 전에 가보라구?”
엘리제가 얼른 가보라는 듯 손짓을 하자 레니는 나타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휙 하니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요란했던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요함이 찾아왔다.
아, 정말 정신없었어. 이젠 진짜 얼른 메르한테 돌아가야지. 뭐, 그래도……, 재미있긴 했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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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님이랑 내기했던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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