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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ida Stella

[보석소녀 엘레쥬]꿈 본문

2차/단편

[보석소녀 엘레쥬]꿈

시나모리 2016. 6. 5. 13:47

 비 오는 날이면 언제나 그 때의 꿈을 꾼다. 그 때 이후로, 수십 수백 번이나 반복된, 그러나 언제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그 때를, 계속.

내 꿈에서 너는 또 다시 죽는다. 모든 것이 검게 물들어버려서, 피조차도 검게 물들어버려서, 마치 네가 어둠 속으로 묻히는 것 같은, 나마저도 어둠 속으로 묻혀버릴 것 같은 그 때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네 모습도 보이지 않고, 나는 그저 무기력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

무섭게 쏟아지는 비 사이로 하늘을 찢으며 번개가 내리치고, 마지막 힘을 다해 이쪽을 바라보며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는 네 피투성이 모습을 보고

                  순

       간

잠           에

                               서

깨                 어

           나

   지.

   

*

   

 눈을 떴을 때, 이미 비는 잦아들고 있었다. 얼굴에 흐른 식은땀과 어느새 흘러내렸는지 모를 눈물을 닦아내고 에리카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아직 일어나기에는 이른 시각이었다. 그렇지만 그 꿈을 꾸면, 항상 이 시간대에 깨고 만다. 비가 올 때마다 늘 겪는 일이었지만, 전혀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니, 익숙해지는 것도 다른 의미로 그다지 기분은 좋지 않은 일이겠지.

 다행히 비는 잦아들고 있었다. 다시 자도 또 그 꿈을 꾸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눈을 감고, 천천히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마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 * *

   

 “비 같은 것 따위, 안 왔으면 좋겠어.”

 또 다시 비가 내렸다. 메마른 생명들을 적셔주는 단비라지만, 에리카에게는 반갑지 않았다. 오늘도 잠들면 그 꿈을 꾸겠지. 안 자려고 버텨 보아도, 어느 순간 까무룩 잠들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또 다시 반복되는 참상을 보며, 또 다시 괴로워하며 깨어나게 되겠지.

 자신과 같은 얼굴을 한 이의 죽음을 보는 것은 절대 반갑지 않은 일이다.

 마치 내가 죽는 것처럼 느껴져서, 나는, 나는 이렇게 살아있는데.

 밤이 찾아오고, 어둠 속에 삼켜져서 또 다시 잠들어버린다.

 오늘도 역시나겠지.

 항상 그랬다.

 달라질 이유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수마가 덮쳐오는 것을 느끼며 에리카는 눈을 감았다.

   

*

   

 “……!”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에리카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언제나 똑같은 꿈, 언제나 반복되는 그 때, 하지만 뭔가 달랐다. 무서웠다. 너무 무서워서, 그래서.

 ‘에릭.’

 너는 마지막으로 내 이름을 불렀어. 하지만 그건 내 이름이 아니야. 그건 네 이름이잖아.

 나와 똑같이 생긴 너는 마지막으로 내 이름을 불렀어. 하지만 아무리 똑같이 생겼다 해도 이름마저 똑같지는 않아. 그건 네 이름이야. 내 이름이 아니야.

 나는 에리카야.

 너는 에릭이야.

 난 에릭이 아냐.

 넌 에리카가 아냐.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야?

 꿈을 애써 부정하며 에리카는 다시 자리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 어딘가 잘못됐어.

   

* * *

   

 “어째서야────!?”

 밖은 고요했다. 큰 창문 사이로 언뜻 보이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아서,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와 대조적으로 에리카의 몸은 온통 식은땀으로 젖어있었다. 또 다시 그 때의 꿈이다. 하지만 비는 오지 않았는걸. 그런데 왜?

 너는 또 다시 내 이름을 불렀어. 하지만 그건 내 이름이 아냐.

 잘못됐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어.

 다시 잠을 청할 용기 따위는 나지 않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수마에 사로잡혀 버렸다.

   

* * *

   

 비가 오든, 오지 않든 나는 계속 그 꿈을 꾸고.

 너는 계속 내 이름이 아닌 내 이름을 부르고, 잔인하게 웃는다.

 번갯불에 비쳐 보이는 그 창백한 웃음은, 너무나도 소름 끼쳐서, 네게 뻗은 손을 거두고 도망쳐버리고 싶어진다.

‘또 도망가려는 거야?’

 피투성이인 너는 그렇게 말하며 또 다시 잔인하게 웃는다.

 아니, 아니야. 그건 네가 아니야.

 ‘에리카’는 피투성이로 잔인하게 웃는다.

 그리고 또 다른 ‘에리카’는 그것을 보고 괴로워한다.

 피투성이인 에리카. 괴로워하는 에리카.

 피투성이인 에리카는 너고, 괴로워하는 에리카는 나지.

 아니, 에리카는 둘이 아니지. 그럼 누가 진짜 에리카일까?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에리카가 아니라는 사실을.

   

* * *

   

 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하지만 꿈은 꾸지 않았다. 에리카는, 아니, 에릭은 쭉 기지개를 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가 내렸는데도 꿈을 꾸지 않았다.

 그 시간은, 너무나도 달콤해서 영원히 깨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에리카…….”

 이젠 어딘가 낯설어진 이름을 멍하니 중얼거리며, 에릭은 밖을 내다보았다.

 5월의 정경은, 너무나도 푸르고 싱그러워서, 그래서 슬플 만큼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그 순간 깨달았다.

 꿈을 꾼 이유도, 꿈이 갑자기 잘못되기 시작한 이유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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