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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ida Stella

[헨리에인]궁중암투 비스무리한 무언가 上 본문

1차/단편

[헨리에인]궁중암투 비스무리한 무언가 上

시나모리 2016. 7. 17. 22:36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에인은 들어오라고 말하며 읽던 종이를 내려놓았다. 얼마 안 가 문이 열리고 중년의 남자가 거들먹거리는 걸음걸이로 들어와 그의 앞에 앉았다. 한동안 맴돌던 무거운 침묵을 깨며 에인은 먼저 말을 꺼냈다.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은 제 허락이 없으면 그 누구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니, 편하게 얘기하도록 할까요.”

 “왕비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그렇다면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도록 할까요. 듣자하니 최근에 폐하께 저를 폐비할 것을 요청하는 서명을 올리셨더군요.”

 말을 마친 에인은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 하나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며 작게 ‘폐비, 폐비라…….’ 라 중얼거렸다. 에인의 말에 상대는 흔들림 없이 여유로운 모습으로 답했다.

 “폐비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면 왕비님의 행실에 문제가 많았단 뜻이지 않겠습니까?”

 “그런 말할 처지가 안 되실 텐데…….”

 에인의 얼굴에 잠시 웃음기가 사라지는가 싶더니, 이내 온화한 미소가 떠올랐다. 예상 외의 반응인 듯 상대의 얼굴에 당혹한 빛이 떠올랐다. 그 모습을 보며 에인은 작게 웃으며 서명서 옆에 놓인 종이를 뒤집었다. 빼곡하게 적힌 숫자에 처음엔 의아한 표정을 짓던 상대는, 이내 그 숫자들의 의미를 깨달은 듯 얼굴이 눈에 띄게 하얘지기 시작했다. 그 반응이 재밌는지 에인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뭔지 눈치채셨나 보군요. 정말, 간도 크시지…….”

 “이, 이걸……, 어디서…….”

 “아, 아직 폐하는 모르십니다. 어디까지나 제가 독자적으로 벌인 일이니까요.”

 점점 얼굴이 새하얘져 가는 상대를 바라보던 에인은 그가 한동안 말을 않자, 더 이상 기다릴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듯 말을 이었다.

 “명민하신 분이라 생각했는데, 제가 대공을 너무 과대평가했나 봅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이렇게 성급하게 행동하시다니.”

 “…….”

 “이번 일도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셔서 꾸미신 일이셨겠지요. 아마 이 서명서에 서명하신 분들도 거의 다 대공과 비슷한 생각이실 테고……. 그런데 이렇게 제게 약점을 들키셨으니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분명 대공의 이름이 맨 위에 있는 걸 보니 이 일을 가장 앞서서 추진하신 건 대공이실 테고…….”

 점점 붉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보며 에인은 즐거운 듯 웃었다. 분명 상대는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이 회담에 응한 것이 틀림없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우위는, 자신 쪽에 있었는데. 에인은 종이를 천천히 흔들며 말을 계속했다.

 “제가 이걸 폐하께 넘기면, 분명 엄청난 일이 일어나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일을 크게 벌릴 생각이 없으니……, 제 요구 조건을 들어주시면 이 문서는 폐기하도록 하죠.”

 “……뭔지 들어나 보죠.”

 에인의 요구 조건을 들은 상대는 얼굴을 더욱 붉히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에게 있어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음이 틀림없었다. 상대가 점점 이성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며 에인은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나 쉽게 넘어올 줄이야.

 “어떻게 하실 겁니까? 대공께 남은 길은 이것밖에 없을 텐데요.”

 “이, 이……, 건방진……!”

 “저도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지요. 아니면, 이 문서를 폐하께 넘겨 드릴까요? 이걸로 모자르시다면……, 이건?”

 에인이 아직 보여주지 않은 종이를 뒤집자, 상대의 얼굴엔 감출 수 없는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요망한 자식……!”

 “하아?”

 “애초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근본도 모르는 천한 것이 감히……!”

 “근본도 없는 천한 것이라…….”

 상대의 마지막 말을 낮게 읊조린 에인은 갑자기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리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들으셨습니까, 폐하? 저보고 근본도 모르는 천한 것이랍니다.”

 “아아, 들었어. 이 귀로 똑똑히.”

 에인의 말에 대답한 목소리의 주인을 깨달은 듯, 상대는 순식간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리고는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듯 중얼거렸다.

 “부, 분명 아무도 없다고……!”

 “어라, 제가 그랬습니까? 저는 그저, 여기엔 제 허락 없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이라 했을 뿐인데. 그리고 제가, 폐하께 허락을 해드리지 않을 리가 없지요.”

 “바, 발칙한……!”

 “아직도 큰소리를 치실 기운이 남아 있는 겁니까? 하아……, 이 분을 대체 어쩌면 좋을까요, 폐하?”

 “그러게-, 어쩌면 좋을까, 에인?”

 “일단 횡령에……, 공문서 위조에……, 지금 당장 목을 쳐도 이상할 게 없긴 합니다만.”

 “뭐, 그런 걸 다 빼더라도 어디서 감히 에인한테 그딴 소리를 하고 말이지……. 피를 못 본 지 너무 오래됐지? 어디, 오랜만에 예전으로 돌아가볼까, 응?”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전 폐하의 뜻에 따를 뿐이니까.”

 옆에 다가온 헨리의 손을 붙잡으며 에인은 웃었다. 예상 이상으로 일이 쉽게 풀렸다. 역시 너무 과대평가를 한 건 아닌가 싶었다. 좀 더 빨리 처리했어야 하는 건데.

 “폐, 폐하……, 왕비님……. 자, 자비를…….”

 “에인, 자비를 베풀어 달래. 어떻게 할까?”

 “그동안의 연을 생각해서 베풀어 드리는 건 어떠십니까. 폐하를 선택할 것인지, 저를 선택할 것인지.”

 “그래, 그게 좋겠네. 어떻게 할래?”

 “와, 왕비님…….”

 방금의 요구 조건을 떠올린 듯 대공은 시선을 에인에게 돌렸다. 어쩜 이리도 멍청할까. 에인은 말없이 헨리를 보며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는 명확했다. 끝까지 도움이라곤 하나도 되지 않는 이였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파멸에 빠뜨리다니, 물론 이쪽에선 더할 나위 없이 고맙지만.

 “그럼 이쪽은 먼저 퇴장해볼까-…, 할 일이 많아진 듯 싶으니.”

 “너무 무리하지 마십시오.”

 헨리가 자리를 비우자 에인은 상대를 보고 픽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리고는 낮게 중얼거렸다.

 “어리석은 분……. 어째서 나를 선택했을까……, 폐하를 선택했더라면 시체만이라도 온전히 남았을 텐데…….”

 말의 의미를 깨달은 듯 핏기가 완전히 사라진 얼굴을 한 상대를 보며 에인은 또 다시 웃었다. 여태까지의 온화한 미소가 아닌, 뼛속까지 얼어붙을 듯한 차가운 미소였다. 어느새 들어온 경비병을 보며 에인은 ‘끌고 가.’라 말한 후, 차가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각오해. 나처럼 근본도 모르는 천한 것은 정도를 모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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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너무 길어져서 두 편으로...나눕니다...빙썅 에인...최고...다음 편은 진짜...이것보다 더 빙썅인 에인...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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